우리나라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19년 세계 여성의 날에 발표된 ‘젠더 평등에 대한 세계인의 태도’ 조사 결과는 성평등에 대한 우리나라 남녀 간의 현격한 인식 격차를 드러내준다. 우리나라 여성 응답자의 3분의 2는 남녀평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느끼고, 우리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데 절반 이상이 동의했다. 응답한 남성의 절반은 우리 사회에 이미 남녀평등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고, 3분의 2의 남성은 우리 사회에서 남성으로 사는 것이 유리할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국이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라는 데 우리나라 남성보다 부정적 인식을 보인 건 조사된 27개국 중 폴란드밖에 없다.
남녀 간에 큰 폭의 인식 격차가 나타나는 원인, 성평등 현실에 대한 객관적 지표와 인식 간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적어도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사회변동으로 인한 남녀 간의 상대적 지위 변화가 특히 남성에게 상실감과 박탈감을 가져온 데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젊은 여성의 삶은 부모 세대에 비해 더 나아졌다는 인식은 우리나라가 조사국 중에도 높은 편(52%)이다. 훨씬 더 열악했던 30~40년 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여성의 삶은 상대적으로 많이 향상된 것이다. 반면 현재 젊은 남성의 삶은 부모 세대에 비해 더 나빠졌다는 응답이 41%로 27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가족 안팎으로 남성중심적 문화가 상당한 도전을 받아 해체되고 있는 중이고, 고용 불안정 확대, 청년 실업 증가 등의 노동시장 변화로 이전 세대 남성에 비해 경제적 안정을 누리지 못하는 급격한 한국사회의 변화가 인식에 반영된 것이다.
문제는 남성들이 느끼는 삶의 질 저하가 결코 여성들이 행복 증가로도 연결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27개국 모든 남녀 응답자가 가장 심각한 젠더 평등 이슈로 꼽은 것이 성추행과 성폭력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여성으로서의 삶은 일상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나라 응답자들이 이보다 더 큰 성평등 문제로 지목한 문제가 있다. 일하면서 자녀를 양육하는 이중 부담의 문제다. 일·가정 양립 문제의 심각성은 조사국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 정부가 무상보육을 제공하고 전 계층에 아동수당을 지급하며 저출산 대책을 위해 온 힘을 쏟는 중에도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과 현실은 크게 바뀌지 못한 것이다. 20년 후에는 자녀 돌봄에서의 성평등이 달성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의 응답자 절반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가족 내에서의 성평등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이처럼 낮은 사회라면, 209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이 1 이하로 내려앉는 건 당연하다.
우리가 얼마나 성역할에 경직된 사회인지 보여주는 더 결정적 증거는 다름 아닌 남성의 역할에 대한 기대이다. ‘남성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남성답지 못하다’는 인식이 76%로 27개국 중 압도적으로 높다. 우리나라 다음으로 높은 나라가 인도인데, 이곳마저도 남성의 역할에 대한 편견은 우리의 절반인 39%에 불과하다. 여성에게 가족 돌봄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만큼이나 남성을 가족 부양을 주로 책임져야 하는 주체로 매어두는 편견이 한국만큼 강한 나라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요컨대 여성은 여성대로 여전히 불리하고 안전하지 못한 성불평등 구조가, 남성은 남성대로 변하지 않은 성역할의 무거운 짐이 공존하는 상태. 이것이 우리나라 성불평등의 모순적 본질이다. 분명 비관적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희망적이다. 성평등 문제가 어느 한편의 몫을 늘리면 다른 한편의 몫이 줄어드는 제로섬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녀가 더 나은 변화를 위해 연대할 때 비로소 사회 변화의 여지는 커질 수 있다. 복지국가 연구로 잘 알려진 에스핑-안데르센은 이 시대를 성역할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끝나지 않은 혁명’의 시대로 묘사한다. 이미 시작된 변화의 여정이 어떤 이유로든 지체될수록 불안정한 혼란과 갈등은 고통스럽게 연장되고, 사회도 저출산의 덫을 벗어나기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사회 안에서 양성이 안전하게 함께 일하고 가족 안에서 함께 돌보는 새로운 균형점, 성평등의 완성이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