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시대와의 불화’를 위로해 준 엔니오 모리코네

입력 2020-07-16 17:39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내 개인 얘기를 좀 해야겠다. 1990년대 초엽쯤이던가. 졸업학점이 미달하여 1년을 더 다니고 간신히 대학 졸업장을 받아 놨지만 여전히 백수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겠기에 알량한 글재주로 방송국에서 스크립터를 하며 용돈을 벌기도 했고, ‘말’이라는 월간 잡지(아마도 586세대는 기억하리라)에 자유기고 형식으로 매달 원고를 보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지리멸렬함에 지쳐가던 무렵, 우연히 당시 신촌에 있던 이화예술극장에서 조조로 영화 한 편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운명처럼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 버린 ‘인생영화’와 조우한다.

이른 시간이라 관객은 나를 포함해 서너 명에 불과했다. 영화가 끝났지만 여전히 밖은 대낮이라 자연히 눈은 찡그려졌다. 그러나 나의 심장은 뛰고 있었고 가슴은 먹먹했으며 귓가에는 방금 전 들었던 영화 속 음악이 계속 맴돌았다.

영화 ‘미션’에서 이미 반해 버린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시네마천국’에서도 주옥 같은 음악들로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 도저히 그냥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그 길로 연대 앞 홍익서점에 들러 영화와 관련된,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영화과 대학원 입시에 필요한 책을 모조리 샀다. ‘영화의 이해’ ‘세계영화사’ ‘시나리오 작법 연구’ 등 시험에 필요한 필견의 참고 도서가 망라되어 있었다. 딱 석 달간 죽어라 공부해서 원하던 영화과 석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다. 물론 시험 운이 따라줬다. 지금도 출제 문제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엔니오 모리코네의 부음을 듣고 30년 전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문득 다시 한번 추억의 명화가 보고 싶어졌다.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가 연주했던 아련한 오보에의 선율 ‘미션’, 영화의 키스 장면만을 편집한 영상을 보며 눈물짓는 토토(자크 페렝) ‘시네마천국’, 그리고 데보라(제니퍼 코넬리)를 쳐다보던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의 젊은 시절 ‘원스어폰어타임인어메리카’….

천재 영화음악 작곡가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덕분에 나의 청춘은 진정 행복했었다고….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알림] 이투데이, '2024 CSR 영상공모전'... 27일까지 접수
  • ‘어둠의 코시’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으로 향하는 매직넘버는? [해시태그]
  • '농협은행'·'거지가 되'…Z세대의 말하기 문화?①[Z탐사대]
  • Z세대의 말하기 문화, 사회적 유산일까 문제일까②[Z탐사대]
  • “AI·카메라 컨트롤 기능 기대감”…아이폰16 출시 첫날 ‘북적’ [르포]
  • “나들이 가기 딱 좋네”…서울시민이 꼽은 여가활동 장소 1위는?
  • '로또보다 더 로또' 강남 분상제 아파트 잡아라…청약 경쟁 '치열'
  • 오늘부터 독감 예방접종 시작…어린이·임신부·어르신 순차 진행
  • 오늘의 상승종목

  • 09.20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84,401,000
    • +0.19%
    • 이더리움
    • 3,418,000
    • +0.06%
    • 비트코인 캐시
    • 456,800
    • +2.19%
    • 리플
    • 796
    • +2.71%
    • 솔라나
    • 197,300
    • -0.4%
    • 에이다
    • 478
    • +1.06%
    • 이오스
    • 700
    • +2.19%
    • 트론
    • 204
    • +0.49%
    • 스텔라루멘
    • 131
    • +2.34%
    • 비트코인에스브이
    • 66,350
    • +2.79%
    • 체인링크
    • 15,180
    • -1.17%
    • 샌드박스
    • 387
    • +7.8%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