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에 이어 ‘방카슈랑스’ 수수료 수익에도 비상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이 방카슈랑스 ‘선납수수료 제도’상 헛점을 지적하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앞서 은행들은 파생결합펀드(DLF)·라임 사태 등으로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가 위축되자, 방카슈랑스 판매에 열을 올렸다. 펀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품인 데다 수수료 수입도 쏠쏠해 눈독을 들였다.
◇이달부터 ‘선납수수료 제도’ 폐지=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달 방카슈랑스 담당자들을 불러 회의를 진행했다. 초점은 방카슈랑스 채널에서의 ‘선납수수료 제도’였다. 선납수수료란 미리 낸 보험료에 대해 수수료도 당겨 주는 제도로 올해 초 교보생명이 처음 도입했다. 예컨대 고객이 12개월간 내야 할 보험료를 1회에 모두 내면 이에 해당하는 1년 치 수수료를 분급 없이 은행에 제공하는 것이다.
금감원은 회의에서 선납수수료 제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선납수수료 제도는 회계 원리상 맞지 않고, 채널 간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계 원리에 따라 수익이 인식될 때 비용으로 인식돼야(수익비용대응원칙) 한다”라며 “하지만 일시납 저축성 상품은 상품이 만들어질 때부터 월납에 대응되는 수수료가 나가도록 설계된 건데 비용이 조기 집행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채널에서는 선지급수수료 개념이 없어 채널 간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선지급수수료는 감독규정에 명문화된 조항은 없지만, 금감원은 이 같은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를 전달했고, 결국 업계 합의를 통해 해당 제도는 이달부터 없애기로 했다. 해당 문제는 금감원 소비자보호처에서 처음 지적됐고, 보험감독국으로 이관돼 처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자리에선 방카슈랑스 채널 구조상 어쩔 수 없었다는 보험업계 담당자들의 건의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곳이 경쟁력이 높은 수수료제도를 만들면 경쟁사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고, 수익원을 잃은 은행들의 수수료 압박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은 DLF와 라임 펀드 대규모 환매 연기 등에 따라 고위험상품의 판매가 불가능해지는 분위기이고 저금리로 투자자들의 정기 예·적금에 대한 니즈(Needs) 또한 줄어들며 영업창구에서 판매할 상품이 고갈된 상태”라며 “수익원이 줄어들어 방카가 뜨고 있는 분위기를 틈타 제도가 만들어졌으며, 다른 생보사 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선납수수료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5개 시중은행(신한·KB국민·우리·하나·농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방카슈랑스 수수료는 311억30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266억7000만 원 대비 16.7% 증가했다.
◇선납수수료 막자… ‘한달 만에 2배’ 절판마케팅 횡행=문제는 선납수수료 제도 폐지가 예정되자, 보험권에서 지난달까지 절판마케팅을 벌였다는 점이다. 이차 역마진이 극심한 상황에도, 은행들이 방카채널에 집중하는 틈을 타 ‘실적 챙기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납수수료 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교보생명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단기납 저축성보험 실적은 교보생명 110억 원, 푸본현대 80억 원 등으로 전월 대비 2배가량 판매를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생보사들은 최근 새 국제회계제도(IFRS17) 및 건전성제도(K-ICS)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성보험 비중을 의도적으로 줄여왔다. IFRS17 제도하에서는 저축성보험에서 지불해야하는 이자를 부채로 인식하기 때문에 쌓아 둬야 할 책임준비금이 커진다. 저축성보험을 많이 판 회사는 제도 도입 시 자본잠식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선납수수료 제도는 수익악화를 겪고 있는 보험업권에서도 좋은 기회였다”면서도 “잠깐의 자산 규모를 늘리기 위해 다시 저축성보험 판매 비중을 높이는 생보사들의 경우 향후 재무건전성에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