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세상에 나쁜 규제는 없다

입력 2020-07-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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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기업의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규제를 꼽는다. 벤처·중소·중견·대기업 모두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기업인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쏟아지는 민원은 대부분 규제를 풀어 달라는 것이다.

혁신성장을 추구하는 정부정책도 규제에 가로막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리쇼어링이나 한국판 뉴딜 정책을 공표했으나 규제를 완화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선행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불필요한 규제를 타파하기 위해 지금까지 정부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규제 전봇대’ ‘손톱 밑 가시’ ‘신발 속 자갈’ ‘붉은 깃발’ 등의 구호를 부르짖으며 규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규제샌드박스, 규제자유특구, 규제완화 한걸음모델, 규제개혁위원회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규제는 철옹성처럼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규제의 생명력은 질기며 복원력은 놀랍다. 규제개혁 노력은 원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한다. 마치 악보의 도돌이표에 막혀 있는 것과 같다.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돌아오게 되니.

원론적으로 규제는 나쁘며 이를 혁파해야 한다는 주장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세부적 규제의 각론에 들어가면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로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규제이건 나름대로 명분과 논리가 있다. 암덩어리처럼 나쁘기만 한 규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규제는 나쁜데 왜 사라지지 않는가 하면 답이 안 나온다.

기업에 대한 규제의 유형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기업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규제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강제하는 규제다.

신규 산업의 혁신 사업에 대한 규제는 기업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규제의 대표적 예이다.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시스템을 택하고 있어 새로운 사업을 수행하려면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산업의 변화 추세를 고려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혁신 사업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혁신 사업이 미래에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덜컥 허가했다가 사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혁신적 금융사업으로 칭송받아 규제를 완화한 사모펀드가 요즘 잇따라 말썽을 빚고 있다.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서 라임자산 운용이나 옵티머스와 같은 사기성 펀드가 생겨나 투자자 피해가 급증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탄받고 있다. 신규 산업의 부상에 의해 전통 산업의 영세 사업자가 몰락하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정부는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강자 중심의 시장 경쟁에서 소외되는 약자의 보호를 우선시하게 된다.

기업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강제하는 능동적 규제는 생명과 환경에 관한 안전규제다. 현재 기업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화관법, 화평법이 이에 속한다. 환경규제 법안을 준수하지 않으면 과징금 부과와 형사 처벌의 제재가 뒤따른다. 이런 규제가 탄생하고 강화되는 것은 인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를 반영한다. 화학물에 대한 규제는 가습기 유독살균제, 화학공장의 유해물질 유출로 인하여 인명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강력해졌다. 안전관리 규제는 구의역 스크린 도어 유지 보수, 화력발전소 석탄설비 취급 과정에서 젊은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으로 강화되었다. 한두 가지 사건사고에 여론이 집중되면서 정부와 국회가 규제 기준을 지나치게 높인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받을 만한다. 그러나 어떤 유형의 규제이건 그 뿌리는 기업에 대한 불신에 있다. 규제의 원인 제공자는 기업이며 규제 강화의 일차적 책임이 기업에 있다는 것이 반기업 정서의 근간이다.

기업의 책임을 인식하지 않고 규제제도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다. 자유로운 기업의 활동이 방임과 무책임으로 흘러 소비자, 투자가, 근로자, 경쟁자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규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규제개혁의 단초는 기업에 달려 있다. 기업들은 사회적 눈높이에 맞춰 제조와 유통 과정에서의 안전관리를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 기업윤리를 엄격히 준수하며 내부규제가 기업문화로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고 사회공헌과 상생협력에 진정성을 갖고 나서야 한다. 연합회나 중앙회와 같은 기업인 단체는 불량 회원사를 자체적으로 적발하고 단속하는 자율규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기업이 신뢰를 얻어 반기업 정서가 친기업 정서로 변화될 때 비로소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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