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강행하면서 홍콩 엑소더스(대탈출) 조짐이 일고 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홍콩 시민을 받아들이기 위한 조치에 속속 나서고 있다.
1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영국이 과거 식민지였던 홍콩 주민에 시민권을 주는 조치를 공식화했다. 중국이 끝내 홍콩보안법을 시행하자 예고했던 대로 이민법을 개정해 홍콩 시민에게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하원 ‘총리 질의응답(PMQ)’에서 “홍콩보안법 제정과 시행은 영국-중국 공동선언의 중대한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영국과 중국이 1985년 체결한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로도 50년 동안 홍콩이 현행 체계를 유지한다는 ‘일국양제’ 정신을 담고 있다.
영국의 이민법 개정에 따라 홍콩 시민 약 300만 명이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기회를 갖게 된다. 1997년 발행한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을 현재 가지고 있는 홍콩 주민 35만 명과 신청 자격이 있는 주민 260만 명이 그 대상이다. 홍콩 전체 인구의 약 40%에 달하는 규모다.
현재 BNO 여권 보유자는 비자 없이 6개월 간 영국에 체류할 수 있는데 이번 이민법 개정으로 5년간 영국에서 거주 및 노동할 수 있다. 이때 정착 지위(settled status)를 신청할 수 있고 다시 1년 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향후 시민권 부여 수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이고 지원 절차도 간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홍콩인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홍콩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홍콩인에 대한 역사적 책임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만 정부도 홍콩인의 이주를 돕는 기구를 설립하는 등 홍콩인의 엑소더스를 적극 돕겠다고 나섰다. 탈중국 성향의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홍콩보안법이 발효된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홍콩인에게 최고로 굳건한 도움을 주겠다”면서 “7월1일부터 홍콩인의 이주를 돕는 ‘대만홍콩서비스교류판공실’이 문을 연다”고 예고한 바 있다.
타이베이에 문을 연 대만홍콩서비스교류판공실은 대만에 이주하고자 하는 홍콩인들에게 취학·취업·이민·투자 관련 원스톱 상담·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대만 정부는 이 기구를 통해 정치적 이유로 신변 위협을 느끼는 홍콩인들의 이주를 도울 계획이다.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반정부 시위 참여자들이 가혹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번지면서 이미 많은 인사들이 대만행을 선택한 상태다. 정치적 망명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의 대만 이민도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대만 이주 홍콩 시민은 5858명으로 2018년 4148명보다 41.1% 급증했다.
미국 의회도 홍콩 주민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지난달 30일 공화·민주당 의원 10여 명은 홍콩보안법이 발효된 지 몇 시간 만에 ‘홍콩 피난처 법안(Hong Kong Safe Harbor Act)’을 제출했다.
법안의 골자는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거나 정치행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거나 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홍콩주민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