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농업 담당 관계자 야누시 워저호스키는 “코로나 사태는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식량 안보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되새긴 기회”라고 평가했다.
지속 가능한 식량 체계 해외 전문가 패널 공동 의장인 올리비에 드 셔터는 “식품 시스템의 자급자족 요구가 더 증가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공급망에 이토록 관심을 보였던 적은 과거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일반인들도 지속 가능한 공급을 위해 행동에 나섰다. 자급자족과 물물교환이라는 과거 소비 행태를 소환했다. 일명 코로나 사태가 부른 신(新)자급자족이다.
미국 매체 머큐리뉴스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빅토리 가든(Victory Garden)’을 만들라”고 제안했다. 빅토리 가든이란 세계 1·2차 대전 때 미국·영국·독일·캐나다 등의 주거지와 공원에 조성한 정원을 의미한다. 전쟁 시기에 식량 자급자족과 사기 진작을 위해 장려됐다.
피자·햄버거·바게트·도넛처럼 주로 밖에서 사 먹던 음식을 집에서 요리했다며 SNS에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도 늘었다. 4월 초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에 따르면 영국인의 42%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음식에 가치를 더 부여하기 시작했다. 38%는 “예전보다 자주 요리를 하고 있다”고 답했고, “버리는 음식량이 적어졌다”고 답한 비율도 33%였다.
음식 외에도 각종 DIY(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 상품이 붐을 이뤘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와중에 마스크 제작 방법과 도면을 전면에 게재하기도 했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한창일 때 ‘마스크 만드는 방법(How to sew a face mask)’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집에 흔히 있는 천 조각, 깨끗한 운동화 끈, 실과 바늘 등이 있으면 누구든지 충분히 마스크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마스크 DIY로 재봉틀 수요가 폭증했다. 나고야에 있는 한 회사는 2~3월 전년 대비 재봉틀 주문이 30% 급증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마스크 제작 방법을 올렸는데 3~4월 다운로드 수가 5만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0배나 늘었다.
방역도 DIY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커피 필터나 진공청소기 필터로 마스크를 만들거나 3D 프린터와 같은 장비로 안면 보호대를 직접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물물교환도 성행했다. 미국에서는 물물교환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붐을 이뤘다. 오렌지, 사과, 당근, 머핀 등 다양한 식료품을 교환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마스크나 화장지를 구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브라우니, 머핀 등 빵부터 영화 DVD, 게임 CD까지 다양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중세시대에 널리 쓰였던 물물교환 시스템이 코로나 시대를 맞아 부활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20~1930년대 대공황 때는 지역 화폐까지 등장하며 물물교환이 성행했다”며 “경제 위기마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물물교환 경제가 활성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화폐 없이도 필요한 물품, 서비스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플랫폼이나 시장이 생겨날 가능성이 커져서다.
메테 리케 투굿투고 최고경영자(CEO)는 “오랫동안 우리는 음식의 실제 가치를 당연하게 여기며 제대로 인정해 오지 않았다”면서 “코로나를 계기로 소비자들이 과거 세대가 음식에 대해 가졌던 존중감을 다시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