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하고 있다.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은행 대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3월 한 달 동안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의 기업대출이 13조4568억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월(3조6702억 원)의 4배 가까이 폭증한 수치다.
대기업의 대출이 8조949억 원이나 불어나, 2월 증가분(7883억 원)의 10배를 웃돌았다. 이례적이다. 대기업들은 통상 은행보다 금리비용이 낮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왔다. 그러나 채권시장 경색으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고 만기 물량이 급증하자, 자금난 해소를 위해 은행으로 몰려들고 있다. 은행에 설정해 둔 한도대출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량기업은 별로 사용하지 않던 ‘마이너스 통장’에서 미리 돈을 빼쓰는 방식이다.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자금 확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국내 회사채 50조8727억 원 가운데 당장 4월 만기인 것만 6조5495억 원이다. 1991년 이후 4월 물량으로 가장 많다. 이를 갚거나 새로운 회사채의 차환(借換)발행으로 만기를 미뤄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작년에 미·중 무역분쟁과 반도체 부진으로 국내 대기업들의 매출실적과 순이익이 크게 악화하면서 현금흐름도 급속히 나빠졌다. 매출 기준 상위 30개 상장사(금융·공기업 제외)들이 2019년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이 2018년에 비해 30% 가까이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현금동원 능력이 취약해졌다는 얘기다. 대기업들까지 돈가뭄을 겪고 있는 상황이니 중소·중견기업들은 얼마나 심각할 것인지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업들의 재무사정이 나빠지면서 신용등급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가시화하고 있다. 잇따른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예고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금난 기업이 속출하고, 이달 대기업 가운데 쓰러지는 곳이 나올 수 있다는 ‘4월 위기설’도 나온다.
대기업 어느 한 곳이라도 유동성 위기로 부도를 맞는다면 파장은 심각하다. 전·후방 관련 중소기업의 연쇄도산과 대량 실업, 경제 위기의 가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100조 원 규모의 기업구호 긴급자금을 풀겠다고 했다.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중심의 대출·보증과 경영자금 지원, 회사채 등의 매입자금 공급 등을 위한 비상대책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코로나19의 충격으로 기업이 도산하는 일은 반드시 막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지금 기업들의 경영난과 돈가뭄은 규모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는다. 상황은 계속 나빠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지켜야 할 기업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쓰러지는 사태만큼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 지원자금 집행이 최대한 빨리, 충분하게 이뤄져야 한다. 적신호가 켜진 대기업 자금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