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 등 투자시장의 ‘큰 손’들의 알짜 투자처로 통하는 KP물(외화 표시 채권) 시장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영향권에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행시장은 물론 유통시장 역시 경색되면서 연기금 등 기관들의 수익률 보존을 위한 투자처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투자은행(IB)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P물의 발행은 지난달 11일 산업은행의 글로벌본드를 끝으로 단 한 건도 진행되지 않았다.
KP물이란 한국 기업이 달러 등 외화 조달을 위해 외국환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달러 표시 KP물을 발행하면 미국 금리를 기준으로 쿠폰(이자)이 지급된다. 기업들이 달러로 채권을 발행하면 원화 채권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데다, 원리금과 이자가 모두 외화로 지급돼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환차익도 챙길 수 있어 기관투자자들은 물론 ‘큰손’ 개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통했다.
실제로 2월 11일 자에 발행된 산업은행의 ‘듀얼 트랜치 글로벌본드’는 만기가 3년, 5년 등 2개 종으로 발행됐는데, 쿠폰금리는 각각 3개월 라이보금리(1.71313%ㆍ2월11일 기준)+35bp(bp=0.01%), 1.75%였다. 모두 같은 기간 국고채 3년(1.299%), 5년물(1.408%)보다 높은 수준이다.
KP물 발행시장은 올해 들어 연초까지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2월 11일까지 KP물은 총 72억 달러어치(약 8조8704억 원)가 발행됐다. 삼성선물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6개월 사이 총 145억 달러어차기 발행됐는데, 올해 초에는 2개월 사이 작년 하반기 절반에 달하는 규모가 발행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KP물은 통상 신용도가 높은 회사가 발행해서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달러로 투자하고 원리금 역시 달러로 받아서 보험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는 물론 최소 투자금액이 20만 달러임에도 큰손 개인투자자들이 많이 찾았다”면서 “하지만 이미 KP물을 산 투자자들 외에는 현재로써는 KP물을 찾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 여파에 KP물 시장이 위축된 것으로 진단한다. KP물 금리는 통상 라이보(Liborㆍ런던 은행간 금리)에 기업의 신용도를 반영해서 정해지는데, 과거에는 풍부한 유동성 덕에 투자자들의 위험선호도 커져서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에도 KP물을 발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금융시장이 휘청이고 기업들의 신용리스크가 많이 반영되면서 기업들이 라이보금리에 가산금리까지 지불해가면서 KP물을 발행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책임연구위원은 “(KP물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미국 등 전세계 금리가 낮아지는 추세인 데다 오히려 환헤지 비용을 오히려 내야 하기 때문에 투자 매력 뚝 떨어졌고, 기업 입장에서는 가산금리 부담 등으로 발행하고 싶어도 발행을 못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