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공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초강력 ‘바주카포’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연준이 주연이었는지 몰라도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선 조연으로 빠지고, 재정 지원이 주연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00~0.25%로 1%포인트 인하하며 5년 만에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다. 지난 3일 0.50%포인트 인하에 이어 불과 2주 사이 두 차례의 ‘빅 컷(큰 폭의 금리인하)’을 단행했다. 일본은행(BOJ)도 예정보다 이틀 앞당겨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현재 연간 6조 엔인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목표를 12조 엔(약 139조 원)으로 두 배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현재 마이너스(-) 0.1%인 기준금리는 동결했다.
주요국 금융당국의 파격적인 경기부양책에도 코로나발 경기침체 공포가 고조되면서 시장은 곤두박질쳤다. 16일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82.6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VIX가 80 이상으로 거래를 마친 건 역사상 세 번뿐이었다.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2997.10포인트(12.93%) 폭락하면서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최악의 낙폭을 기록했다. 이날까지 서킷브레이커도 1주 만에 세 번 발동됐다. 지난 3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을 때 785.91포인트(2.94%) 급락, 유동성 공급을 대폭 늘린 지난 12일 2352.60포인트(9.99%) 낙폭에 이어 연준이 움직일수록 시장이 더 큰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준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 이유로 코로나 사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꼽는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금융권의 신용경색이 아닌, 공중보건 위기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실물경기가 바짝 위축된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투입한다고 해서 경제 주체들의 소비나 투자가 살아나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연준이 10여 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썼던 처방전을 그대로 쓰니 시장이 꿈쩍 않는다는 것이다.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는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도입한 정책 조합은 지금의 위협에 맞춰 설계된 게 아니다”라면서 “낡은 무기가 아닌, 2020년 팬데믹에 대응하는 새로운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연준이 조연으로 물러나고 재정 지원이 주연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코로나19 위기의 특징이 수요 증발에 있기 때문에 재정정책의 수요 보충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를 설립한 ‘헤지펀드 대부’ 레이 달리오는 “연준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면서 “이제는 연방정부의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학교, 식당, 영화관, 스포츠 행사 폐쇄로 인한 경기 위축에 숨통을 틔우기 위해 전 세계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출 패키지를 내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지시에 따라 기업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한 만큼 그에 따른 피해를 정부가 보상해줘야 한다는 심리가 깔려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부작용도 우려된다. 각국 정부가 빚더미에 올라탄 상황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기 힘들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