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금융감독원의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행위 고발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증선위) 결정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금융감독원의 고발권한에 대해 이러한 제한을 두는 것은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부당하다. 수표가 부도나면 은행도 아무런 제한 없이 고발을 하는데, 하물며 엄중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조사를 거친 금감원 고발에 대해 증선위 허가를 받아야만 할 수 있다고 제한하는 것은 고발의 취지나 개념에 명백히 모순된다.
금감원의 불공정거래 조사는 조사팀의 조사, 내부 심사 조정 및 제재심의국과의 협의, 그리고 결재권자의 최종 결재를 거쳐 고발 여부를 결정하게 되므로 조사 착수부터 최종 결정까지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금감원에서 오랜 시간 심도 있게 마련한 고발에 대해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자조심)의 위원 몇 사람이 짧은 시간에 ‘고발 여부’를 결정한다.
자조심은 법률상 조직도 아니다. 또 자조심 결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선위로 안건이 넘어가 다시 같은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고발해도 좋은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고발 중에서 가장 힘든 고발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검찰은 증선위의 고발 의결이 있든 없든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수사할 수 있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온라인으로 접수된 제3자(주주가 아니어도 상관없는)의 사소한 고발장 1장만으로도 금감원 고발과 동일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증선위 의결이 있어야만 금감원의 검찰 고발이 가능하다는 제도는 왜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불공정거래의 조사 내용은 우리나라 최고 조사기구인 금감원 조사국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물인데도 자조심, 증선위에서 단 몇 분의 토의를 거쳐 고발 허가·불허가가 결정된다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제도에 맞는지를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다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증선위, 자조심에서 논의 끝에 고발한 사건일지라도 20% 정도는 불기소된다. 허무한 일이다. 그 고발이 무리하거나 잘못된 것임이 드러날 경우에는 고발을 결정했던 ‘금융위(증선위)’는 빠지고 고발한 ‘금감원’만 뭇매를 맞는다.
즉, 고발권자와 고발허가권자(이런 법률 용어는 없지만)가 다른 데서 오는 모순이다. 권한에는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어야 하는데 증선위, 자조심의 경우 권한은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이 없는 셈이다.
법 이론상, 고발할지 말지에 제한을 두는 것은 위법이다.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고발은 금융위원회의 전속고발권도 아니고 증선위 결정은 공정위처럼 준사법적 기속력도 없다. 신속을 요하는 형사사법제도에서는 그와 같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심의나 의결 절차는 사법정의를 방해하는 요소라고 교과서에도 명시돼 있다.
사실, 금융위는 금융산업 정책, 금융기업 감독을 담당하며 인·허가를 비롯한 준사법적 제재 수단까지 보유한 막강한 기관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에는 항상 비켜서 있고, 전면에 나서 업무를 처리한 금감원만 속칭 ‘독박’을 써왔다.
이제라도 이런 불합리한 상황은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금감원 고발에 대한 금융위 허가’와 관련된 것을 가장 먼저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