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이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정예고한 ‘일감몰아주기 심사지침’ 제정안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명확한 기준이 많아 기업들의 혼란을 초래하고 상위법에서 위임한 한계를 벗어나 규제를 더욱 강화한 측면이 있어 일부 규정을 삭제·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경연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심사지침’ 제정안에 대한 정책건의서를 지난 27일 제출했다고 28일 밝혔다.
공정위는 이달 12일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심사지침(이하 일감몰아주기 심사지침)’ 제정안을 행정예고 한 바 있다.
한경연은 공정위의 이번 심사지침 제정안이 불명확한 기준이 많아 기업들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감몰아주기 요건 심사 시 이익제공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검토할 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는데, 심사지침 제정안은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 ‘사회통념’, ‘일반적인 인식의 범위’ 등 불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사업기회의 제공’을 판단함에 있어 시간적 기준도 불명확해 규제당국의 자의적인 제재 적용이 가능하다.
한경연은 “이와 같이 심사기준에 계량적·구체적인 고려 방법이 없을 경우 사실상 공무원에게 판단을 위임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며 “그런데 일감몰아주기 규제 위반 시 기업에 형벌이 부과될 수 있기 때문에 재량에 맡기기보다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따라 그 기준이 명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또한 심사지침이 상위법령인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보다 더 강한 규제를 하고 있다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법이 규제대상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하위법령인 지침에서 위임 없이 규제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제23조의2는 이익의 제공주체와 제공객체로 각각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회사’와 ‘특수관계인’, ‘특수관계인이 일정 지분 비율 보유한 계열회사’로 규정하고 있으며 제3자는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하위 법령인 심사지침 제정안은 법에서 규정하지 않은 내용인 ‘제3자를 매개로 한 간접거래’도 포함하고 있어 법 보다 더 강화된 규제를 가하고 있다.
시행령 별표 1의 3은 ‘그 밖의 회사가 합리적인 사유로 사업기회를 거부한 경우’ 등은 일감몰아주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합리적인 이유로 사업 기회를 거부하는 경우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회사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해도 된다는 것이다.
반면 시행령의 하위법령인 심사지침 제정안은 경제성, 전문성 등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고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회사(제공주체 회사)를 기준으로만 ‘사업 기회 제공’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어 상위법령의 내용에 없는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한경연은 이번 심사지침의 문제로 상위법령을 사실상 축소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꼽았다.
심사지침 제정안에서는 부당한 이익제공 등에 대한 예외기준으로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시행령 별표에서 관련 예외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음에도 심사지침 제정안은 예외규정을 축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행령에서는 유용한 기술 또는 정보 유출에 따라 경제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초래되는 경우 보안성을 인정하여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반면 심사지침 제정안에서는 보안장치를 사전에 마련한 유용한 기술 또는 정보라고 하더라도 보안 유지 가능성, 시장에서 독립된 외부업체와 거래 사례가 있는지 등을 고려해 판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상위법에서는 보안유지나 외부업체와 거래사례 등과 관련한 적용 제외 규정이 없음에도 심사지침에서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위반 시 형벌을 부과할 수 있어 그 심사기준이 명확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시행 전 일감몰아주기 심사지침 제정안에 대한 대폭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