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형 중소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융자보다 투자 성격의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금융시장의 역사가 짧고 모험자본의 축적이 빈약하여 혁신 기업에 자금이 순환되는 투자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혁신성장을 위한 혁심금융을 정부가 주도하여 이끌어 내고 있다. 정부 예산을 한국벤처투자, TIPS 등에 마중물로 투입하여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자금이 공급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 덕분에 올 상반기 벤처투자액은 1조8966억 원에 이르며 연말까지 4조 원 이상의 자금이 스타트업과 벤처로 흘러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들어와 정부는 금융산업도 전면적으로 ‘혁신금융’으로 전환하여 민간 금융기관이 보수적인 여신 관행에서 벗어나 향후 5년간 225조 원을 미래 성장성 있는 혁신·중소기업에 지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최근에 금융위원회는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해 내년에 ‘기업성장투자기구’(BDC)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혁신기업 자금 조달체계 개선 방안도 발표하였다.
BDC는 스타트업·벤처에 투자하는 일종의 간접투자펀드로 일정 요건을 갖춘 금융회사가 BDC를 만들어 벤처 투자자금을 공모하여 주식시장에 상장해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할 수 있는 제도이다. 금융위는 BDC에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더불어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과감히 모험투자를 이행할 수 있도록 면책제도 개편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가 과감하게 대대적 자금을 혁신기업에 공급하고 투자가를 유인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정부 주도의 혁신금융에 대하여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인위적으로 벤처기업에 쏠리면 기술혁신보다는 머니게임에 몰입하는 도덕적 해이가 난무할 것이 걱정되고 있다. 자칫 벤처투자가 과열되어 과거처럼 버블이 발생하고 투자 손실이 급증하여 투자가 보호라는 명분으로 새로운 규제가 생겨나 투자여건이 급랭하는 문제가 재발될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민간에서 창업기업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창업가와 투자가 사이의 가치평가(valuation)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기술과 기업의 미래 가치에 대하여 창업가는 낙관적으로 평가하고 투자가는 비관적으로 평가하기 마련이다.
혁신적인 기술일수록 미래 가치의 괴리가 더욱 커지게 된다. 흔히 말하는 대박 아니면 쪽박의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의 벤처인 경우 창업가는 성공할 경우의 고수익에 중점을 두지만 투자가는 실패할 확률의 고위험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다.
이에 따라 투자가가 요구하는 조건이 창업가 입장에서는 과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매출이 없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투자가는 지나치게 위험회피적이다. 개인투자가는 투자원금 손실을 극도로 기피한다. 기관투자가는 투자 성과와 연동하여 임직원의 성과를 평가하며 투자가 실패할 경우 책임을 묻는다. 대기업도 벤처기업 투자나 인수가 투자금 이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관련 임직원 개인에게 책임을 지게 만든다. 투자위험을 최소화하면서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투자가의 성향이 모험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혁신금융을 선언하고 밀어붙여도 소극적인 투자가를 모험적으로 바꿀 수단은 없다. 투자가 혜택을 과도하게 부여하면 오히려 묻지마 투자가 성행하여 후유증이 커질 수 있다. 답답하다고 정부 예산을 늘려 자금공급을 확대하면 민간의 역할이 더욱 위축된다. 너무 정부가 앞장서면 자칫 또 다른 관치금융이 되어 정책 실패를 야기할 수 있다. 역대 정부에서 기술금융, 창조금융으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자금공급과 투자 혜택을 적절히 제공하여 과열되지 않으면서 투자 동기가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창업가와 투자가가 서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가치평가가 이루어지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투자가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실패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투자 역경매나 투자손실보험 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단순한 양적 확대가 아니라 질적 혁신이 이루어지는 혁신금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