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동시적 불황(synchronised stagnation)’ 시대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일부 국가는 성장이 약하고, 그외 다른 나라에서는 아예 성장이 없거나 미약하게 위축되는 등 세계 경제가 동시적 불황 시대에 진입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와 브루킹스연구소는 글로벌경제회복지수(TIGER·타이거)를 최신판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이런 진단을 내놨다. FT에 따르면 8월 타이거지수는 0.4428로, 직전 최저치였던 2016년 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타이거지수는 △수출입·국내총생산(GDP)·산업생산·제조업 주문 등 실물지수 △주식시장 시가총액과 주가지수 등 금융지수 △소비자·기업의 경기심리를 조사한 신뢰지수 등을 토대로 산출한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지속된 무역 긴장, 정치적 불안정성, 지정학적 위험과 통화 정책의 제한된 효과에 대한 우려가 소비자와 기업의 심리를 저하시키면서 투자와 생산성을 억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저성장을 우려하는 시각이 세계적으로 팽배하긴 하지만,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고 보는 건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고용이 유지되고 있고, 그로 인해 가계 수입 및 소비 증가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거지수는 2018년 1월 이후 줄곧 하락세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무역 긴장을 높이면서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상대로 고율의 관세를 물리고 수출입 규제를 가하는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또 무역 전선을 유럽으로 확대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국제무역 부진이 글로벌 경기 악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해 세계 무역량은 1.2%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이번 지수에서 미국은 다른 주요국들보다 높은 수치를 유지했으나 하락세는 면치 못했다. 노동시장이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제조업과 서비스업 양쪽에 걸쳐 급격한 둔화가 나타났다. 보고서는 무역전쟁으로 기업 심리가 위축되면서 투자 감소로 이어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유로존의 성장 엔진인 독일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소비가 아직 살아있고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 이웃국가들의 경기 호전으로 버티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멕시코 등 글로벌 경제 성장에 기여해온 주요 신흥국들도 경기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신흥국 중에서도 성장세가 특히 둔화하고 있고, 인도는 미국의 관세 폭탄을 맞지 않았음에도 낮은 가계 소비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의 종합지수는 -7.5127로 10년여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한국은 실물ㆍ금융ㆍ신뢰 등 3개 지수가 동반 하락했다.
연구소는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 인하 등 경기부양 조치에 나섰지만 금리가 이미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에 있어 취약한 경제를 구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프라사드 연구원은 “정부가 광범위한 구조개혁에 나서면서 재정정책에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지속된 금리인하는 세계 동반 침체를 부르는 화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