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12일(현지시간)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3년 반 만에 금융완화를 검토한다. 현재 마이너스 0.4%인 중앙은행 예금금리를 더 낮추는 것은 물론, 완화정책을 더 장기간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0일 보도했다. 다만, 국채 등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양적완화 정책 재개에는 이견이 있는 만큼 신중하게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침체가 진행되는 가운데 앞서 금리 인하를 단행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와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ECB는 2018년 12월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하고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금융완화로 돌아서면 부진한 물가 상승세 탓에 금리 한 번 올려보지 못하고 다시 완화 국면에 돌입하게 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 후 기자 회견에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며 9월 완화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경기 부양 카드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ECB는 9월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완화 카드를 내놓을지 막바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이 금리 인하 재개다. ECB는 단기 금리의 지표가 되는 주요 정책 금리를 제로%, 은행이 잉여 자금을 중앙은행에 맡길 때의 금리를 -0.4%로 하고 있다. 금리 인하는 미국과 유럽 간 금리 차로 직결되기 때문에 유로화 강세를 막는 효과가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중앙은행 예금금리를 -0.5% 정도로 인하할 것이라는 견해가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 예금금리 인하는 자금을 맡기는 민간 은행의 수익을 압박한다. 은행권은 “저금리는 장기적으로 금융 시스템을 망친다”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ECB는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는 대상을 중앙은행 예금의 일부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ECB는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더 낮은 수준으로 적어도 2020년 상반기까지 유지한다”는 포워드 가이던스 변경도 염두에 두고 있다. 혹은 이 기간을 더 길게 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 9월에 시작하는 은행에 대한 장기자금공급프로그램(TLTRO3) 조건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대 관건은 작년 12월에 끝난 양적완화 정책을 계속할지 여부다. 완화에 신중한 독일과 네덜란드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모든 정책 수단을 동시에 투입할 필요는 없다”는 등 신중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CB는 이미 기준금리가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 국채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 완화 여지는 제한적이다. 금리를 너무 낮추면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해 대출이 늘지 않거나 금리 생활자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차기 ECB 총재로 내정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4일 유럽의회 경제금융위원회에서 대담한 완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잠재적인 부작용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작용이 효과를 웃도는 수준(리버설 레이트, reversal rate)을 확인하면서 제한된 카드를 어디에서 꺼내느냐가 ECB의 큰 과제다.
완화 경쟁의 확대는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데 일정한 효과가 있지만 자산 버블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미 세계의 부채 잔고는 리먼사태 이전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어서 위기의 싹이 부풀어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