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부터 공정거래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협약에는 대기업과 협력사의 공정거래 및 각종 지원에 대한 세부 사항이 담겨 있다. 2018년 기준, 대기업으로 분류된 200여 곳이 2만8000여 개 협력사와 협약을 유지 중이다.
협약제도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예방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가운데 협력사와의 공정거래는 △수입대체 △수출확대 △품질향상 등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나아가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예방과 경쟁력 강화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 의지도 담겼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각 사업장에 상주하는 1~2차 우수 협력사 임직원 1만9000여 명에게 총 323억3000만 원에 달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한 것.
일본 수출규제, 미·중 무역 분쟁 등 대외 악재 속에서도 하청업체와 공정한 거래를 바탕으로 동반성장을 이어가겠다는 회사의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인센티브 대상에는 생산 및 품질 관련 근로자 이외에 협력사의 사업장 설비 유지 및 보수 직원, 청소 인력까지 대거 포함됐다.
2010년 시작한 협력사 인센티브 누적 금액은 올 상반기까지 총 3059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부터는 인센티브 지급 대상을 1차 협력사에서 2차 우수 협력사까지로 규모도 확대했다.
삼성전자는 단순하게 재정적 지원을 넘어서 협력사와 공정한 위치에서 신기술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기술적 지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동반성장위원회의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8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현대·기아차는 협력사 기술 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최신 기술과 법규 동향, 규제 대응 등을 공유하는 ‘협력사 R&D 관리자 세미나’를 2008년부터 시행 중이다.
세미나를 통해 협력사 경영진은 대기업의 경영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수 받는다. 협력사 스스로 자립 경영 기반을 다지고, 현대차와 동등한 입장에서 공정한 거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원청사가 돕고 있는 셈이다.
이런 노력은 실제 협력사들의 경영 현장에서 효과를 내고 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현대차그룹 주요 11개 그룹사의 1차 협력사(2380개) 매출 추이를 보면, 2010년 95조 원에서 2015년 163조 원으로 무려 72%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차 협력사까지 지원하고 협력사 직원에 ‘작업 중지권’도 부여 = 화학 업계는 협력사와의 상생을 위해 부당거래 차단 및 나눔실천 등 다양한 솔루션을 구축하고 있다.
LG화학은 △공정한 거래문화 조성 △금융 지원·결제 조건 개선 △안전환경 및 에너지 상생 활동 △협력사 역량 강화 △정보 공유 및 소통 활동 등 동반성장 5대 전략을 통해 공정 경영을 확대해 왔다.
특히 공정한 거래문화 구축을 위해 자체적으로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도입해 눈길을 끈다. 자율준수 관리자를 선임해 협력사를 상대로 부당거래가 이뤄지지 않는지 살피는 시스템이다.
이 프로그램은 1차 협력사는 물론 2차 협력사까지 범위를 넓혔다. LG화학이 납품 단가 인상, 금융 지원, 대금 결제 조건 개선 등을 1차 협력사에 지원하면, 1차 협력사는 해당 조건 그대로 2차 협력사를 도와야 한다. 자율준수 관리자가 살피는 부분이 이런 항목이다.
SK그룹 화학사는 ‘1% 행복나눔기금’으로 협력사와 상생 보폭을 넓힌다. 1% 행복나눔기금은 SK인천석유화학 임직원이 매달 기본급의 1%를 기부하면 회사가 같은 금액만큼을 더하는 1대 1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조성된다.
기금 외에도 협력사 직원의 현장 안전 보장을 제도화했다. 이른바 협력사 직원의 ‘작업 중지권’이다.
작업 중지권은 작업 환경에 위험 요소가 있거나 안전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근로자 판단 아래 즉각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이다. SK인천석유화학이 업계 최초로 협력사 임직원을 위해 시작했다. 그만큼 대기업과 협력사의 동등한 위치와 지위가 보장되는 셈이다.
◇협력사와의 공정거래가 상생의 자양분 = 일각에서는 아직도 협력사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과 공정거래를 위한 지원이 활발하지 않다고 본다. 또 하청업체에 원청사가 의도를 갖고 개입한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선의를 갖고 협력사를 돕더라도 경직된 국내 노사문화에선 한계가 존재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결국 대기업의 공정거래 협약이 더욱 확산되고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협력사와 우리 사회가 편견없는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런 환경이 조성돼야 기업의 공정거래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되고 나아가 중소협력사가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협력사 가운데 독자적인 기술을 갖추고 대등한 위치에서 공정한 거래를 이어가는 1차 협력사들이 상당수 늘어나고 있다”며 “미래 자동차 시대가 다가올수록 협력사의 기술 자립도가 공정거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