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성장에 있어서 혁신에 무게중심이 실리고 성장은 소외되어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혁신성장 보고서와 자료에서 혁신에 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성장에 대한 내용은 희소한 편이다. 마치 혁신만 하면 자동적으로 성장이 따라오는 것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혁신은 성장을 위한 수단이며 성장은 혁신의 성과다. 그러므로 성장에 기여하지 않는 혁신은 무용한 것이다. 성장을 고민하지 않고 혁신만 밀어붙이면 성장통이 온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현재 혁신성장을 두고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은 성장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 도입되어 성장하면 기존의 전통적 사업자가 몰락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제한된 시장을 놓고 혁신적 사업자와 전통적 사업자가 경합하는 승자(Win)와 패자(Lose)의 제로섬(Zero-Sum) 상황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경제 논리로는 혁신을 찬앙하면서 정치 논리로는 혁신을 규제하는 이율배반의 역설이 혁신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한계의 근본적 원인은 혁신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없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조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단절적 혁신을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은 기존의 사업을 대체하는 점증적 혁신에 머물고 있다.
협소하고 과밀한 국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전문화하여 집중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넓게 펼쳐야 한다. 과거에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오늘날 대기업급으로 성장한 벤처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라. 특히 인터넷 기업의 경우 안 하고 있는 게 없을 정도로 다 하고 있어 골목상권 침해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때 열광하였던 독일의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을 살펴보자. 히든챔피언은 틈새 제품에서 남이 추종하지 못하는 우수한 기술을 갖고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등을 추구하여 성장한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을 새롭게 창출하지 못하면 시장을 찾아 넓혀 가는 것이다. 우리 혁신기업도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면서 갈등을 피해 성장하려면 글로벌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당위론적으로 들릴 수 있다. 중소기업의 성장전략에서도 글로벌화는 많이 이야기가 되었고 정책적으로 상당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 중소기업 수는 10만 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형 히든챔피언을 육성하는 정책이 추진되었지만 그 성과는 미미하다.
글로벌화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질적인 외국 시장에 진입하는 데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 우선 경영진과 실무자의 국제화 경험과 지식도 미흡하며 해외시장에 관한 자료와 정보가 부족하다. 또한 국제시장은 가격경쟁이 치열하여 채산성이 저하되는 가운데 현지 판매와 마케팅을 위한 선행투자 비용이 발생하여 현금 유동성을 악화시킨다. 무엇보다 국내 사업에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환율 변동, 인허가 규제와 통관, 현지국의 정치 상황 등의 리스크도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시험적으로 해외 시장을 타진하는 단계를 넘어 본격적으로 글로벌화를 추구할 때 코스트와 리스크가 급증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봉착한다. 벤처기업이 양산 투자를 이행할 때 자금난에 직면하는 ‘죽음의 계곡’이 글로벌화의 확장 단계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금융에서도 수출금융의 부실률이 높은 편에 속한다. 수출 중소기업이 확장을 추구하면서 자체 자금뿐 아니라 정책자금까지 투입하였지만 매출 신장이 부진하여 유동성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환율변동은 또 다른 골칫거리이다. 환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은행의 KIKO(Knock-In Knock-Out) 상품에 가입했다가 변동폭이 커지는 바람에 환손실로 인하여 멀쩡한 강소기업이 졸지에 흑자 도산 사례도 있다.
안락한 국내시장을 나두고 험난한 해외시장에 가서 성장하라는 것은 어려운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빠진 혁신성장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혁신기업은 우물 안에서 약자와 싸우지 말고 우물 밖으로 뛰쳐나가 강자와 싸워야 한다. 운동경기에서 전국 체전에 머물지 않고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경기해야 기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과 같다. 우리 혁신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적 수준의 혁신기업과 경쟁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혁신성장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도 혁신기업이 글로벌화에서 직면하는 죽음의 계곡을 벤처 지원하듯이 과감하게 지원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