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경제성장세 후퇴로 경기가 계속 부진하고, 산업수요 감소와 가동률 저하에 따른 재고 누적 등이 물가를 끌어내리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경기 침체와 물가 하락이 장기화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OECD 자료에서 한국의 2분기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0.7%로 36개 회원국 중 31위였다. 1분기에도 0.5%로 33위에 그쳤다. 기후조건이나 국제정세 변수가 큰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2분기에 0.7%로 30위의 최하위 수준이다.
이달 초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에서도 물가지수가 104.56(2015년 100 기준)으로 전년 동월보다 겨우 0.6% 올랐다. 6월보다는 0.3% 하락했다. 물가상승률은 올 들어 7개월 연속 1%를 밑돌았는데, 2015년 ‘메르스 사태’로 내수시장이 급속히 위축됐던 이래 가장 오랜 기간의 0%대 상승폭이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도 1% 미만을 기록할 공산이 크다. 연간 0%대의 물가상승률을 보인 해는 외환위기 이후 경기가 바닥이었던 1999년(0.8%), 국제유가가 폭락한 2015년(0.7%) 말고는 없다.
통계청은 저물가가 장기간 지속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으로 규정했다. 정부는 수요 악화와 함께, 무상급식 확대와 무상교복 지급 등 복지정책에 따른 공공서비스 물가 하락, 농산물 풍작, 국제유가 안정이 소비자물가를 끌어내렸다고 설명한다. 한국은행이 8일 내놓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도, 식료품·에너지와 정부 정책의 영향이 큰 공공서비스 등 ‘관리물가’ 요인까지 제외한 근원물가는 2분기 1.1%, 외식비 등 개인서비스와 일부 공업제품의 경기민감물가가 1.6%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분기의 각각 1.5%, 1.9%에 비하면 크게 뒷걸음질한 것이다. 경기 악화로 수요가 줄면서 물가도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는 이유다. 장기간의 물가하락은 소비 감퇴와 기업의 생산 및 투자 축소로 이어진다. 성장의 동력이 사라지고, 고용이 부진한 악순환이다. 한국 경제가 이미 디플레 국면에 진입했다는 경제전문가들이 많다. 제품이 안 팔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재고가 늘면서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 때문이다.
디플레는 가장 나쁜 경기 흐름이다. 미·중 무역전쟁 확산, 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경제 여건은 갈수록 암담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디플레의 장기 침체에 빠져들면 경기를 되살리기 어렵게 된다. 총체적 경제난국이다. 금리인하, 추가경정예산 등 수요진작 대책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감세, 규제혁파 , 노동개혁 등을 통해 투자를 늘리는 공급확대가 선행되지 않으면 이 위기를 넘기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