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의 디지털, 그 방향성에 대하여

입력 2019-07-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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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연 금융부 기자

“블록체인이요? 딱히 쓸 곳은 없어요.”

블록체인 기술이 은행 업무에 어떻게 적용되냐는 질문에 모 시중은행 디지털본부장은 무심한 듯 대답했다. 다른 은행에서 돌아온 대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 모두 위에서 내려온 ‘디지털 초격차’ 지시에 블록체인이니 인공지능이니 신기술 개발로 분주했지만, ‘왜’라는 본질적인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하는 듯 보였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4대 1로 이겼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열풍이 불면서 산업계는 물론 금융계까지 인공지능 기술 도입에 매달렸다. 2017년에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비트코인 거래의 바탕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을 받았고, 블록체인이 디지털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디지털에 민감한 금융권은 너도나도 관련 전문가 채용에 열을 올렸다. 공채 순혈주의가 강한 은행도 외부 인사 영입에 망설임이 없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R&D혁신센터를 세우고, 부서를 개편했다. 은행 앱에는 ‘인공지능 도입’, ‘블록체인 도입’ 광고 문구가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은행 고객들은 해당 기술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은행권이 최근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답은 고객 정보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농협은행은 지금껏 축적된 데이터를 이용해 전 세계 해커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올 하반기 완성시킬 예정이다. 부산은행은 이미 인공지능 기반 보이스피싱 탐지 시스템을 만들어 최근 1개월 동안 50건 이상의 금융사기 피해를 막았다.

“지금도 은행권 시스템이 너무 잘돼 있어서,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굳이 필요하지 않아요.”

실무자들이 새로운 기술 개발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이유였다. ATM기기 하나로 입·출금, 송금, 환전, 대출까지 가능한 나라는 선진국에서도 흔치 않다고 은행권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금융권에 남은 과제는 시스템 선진화보다는 고객 정보보호다. 금융권이 ‘왜’라는 질문에 고객 정보보호를 위한 과감한 투자라고 망설임 없이 답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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