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사태’의 장본인인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사망한 것으로 검찰이 확인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예세민)는 4일 정 전 회장이 지난해 12월 1일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정 전 회장 사망 후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에콰도르 과야킬시 소재 화장장에서 화장했고, 관청에 사망신고 등의 행정절차를 모두 마친 것으로 파악했다. 에콰도르 정부로부터 출입국관리소 및 주민청 시스템에 사망 사실이 등록돼 있으며, 사망확인서가 진본인 사실을 확인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사망증명서, 확인서 등을 확보했고 진본인 것을 확인했다”며 “정 전 회장이 사망했다는 것에 대해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의심할 만한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한근 씨가 제출한 노트북에서도 정 전 회장의 사망 직전 사진, 입관 시 사진, 장례식을 치르는 사진 등을 확인했다. 또 가족에게 정 전 회장의 사망 사실을 알리고 관련 사진을 보냈다는 진술 등을 확보했다. 장례식에는 가족 중 정한근 씨만 참석했다. 검찰에 따르면 장례비용은 900달러 수준으로 치러졌다.
또 검찰은 A4 용지 150페이지 분량의 정 전 회장 자필 유고를 확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외국으로 도피한 직후부터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마지막 부분은 2015년경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도피 이전에 사업할 때, 옛날 자기 생애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담겼다”고 설명했다. 유고를 토대로 정 전 회장의 재산을 추적하는 단서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을 전망이다.
앞서 정 전 회장은 한보학원 산하의 강릉 영동대학교 교비 65억 원 횡령 의혹에 대해 특경법상 횡령, 업무상 배임, 범죄수익은닉처벌법 위반, 사립학교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2006년 2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을 받던 정 전 회장은 2007년 5월 2일 치료를 이후로 일본으로 출국하겠다고 요청해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출국금지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은 당초 목적지와 달리 말레이시아로 출국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을 거쳐 2010년 경 에콰도르에 정착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은 정 전 회장이 불출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계속 진행해 2009년 5월 징역 3년 6개월을 확정한 바 있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징역형의 집행은 불가능해졌다. 또 체납된 국세 약 2225억 원도 환수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2010년 고려인으로 추정되는 키르기스스탄인의 인적사항을 이용해 키르기스스탄 정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아 에콰도르로 이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과야킬 인근에서 유전개발사업을 진행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정한근 씨는 도피생활 21년 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던 중 파나마에서 붙잡혀 지난달 국내로 송환됐다. 정 전 회장의 유골을 한국으로 보낼 방법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유골함을 고국으로 보내 모시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던 과정에 파나마에서 억류됐다는 취지로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씨가 정 전 회장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통곡한다”며 “외국으로 모시면서 만리타향에서 돌아가시게 한 것에 대한 회한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 씨에 대한 재판은 11년 만에 재개될 예정이다. 정 씨는 1997년 11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의 자금 약 322억 원을 횡령해 스위스의 비밀 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