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에 환율은 매우 중요하다. 달러 대비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품의 외국 시장에서의 가격이 낮아지기 때문에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향상된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만으로 전체 수출 경쟁력을 측정하는 관행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미국 외에도 중국, 일본, EU 등 무역 상대국이 많고, 이들의 환율은 미 달러와도 다르게 움직인다. 즉, 원·달러 환율의 대표성이 떨어진다. 둘째, 수출 가격 경쟁력은 해당 상품의 원화 가격에도 영향을 받는다. 환율과 수출 상대국의 국내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 해도 수출 상품이 국내에서 비싸지면 외화로 표시된 가격도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수출 가격 경쟁력을 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국내와 수출 대상국의 물가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실질실효환율이다. 여러 교역 상대국 통화 대비 환율과, 한국과 이들 나라들의 상대적 물가를 고려해 산정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선호하는 수출경쟁력지수이다. 또 교역량이 많은 나라의 수치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대표성이 담보된다.
같은 방식으로 인건비가 수출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인건비는 기업의 가장 큰 비용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오른 나라가 그러지 않은 곳에 비해 수출 가격 경쟁력이 낮을 것이라는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를 위해 실질실효환율 계산에서 물가 대신 제조업체가 만드는 물건 하나당 드는 인건비, 즉 단위노동비용을 사용해 실질실효환율을 계산한다. 이 지수가 오르는 것은 환율의 실질가치가 오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 수출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 즉 대외 경쟁력 약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실질실효환율에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바탕을 둔 것과 단위노동비용에 바탕을 둔 것이 있다. <그래프>는 2013년 1분기를 시작으로 올해 1분기까지 CPI와 단위노동비용을 사용해 계산한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를 용이하게 하려고 2013년 1분기 값을 1로 표준화하였다. CPI를 사용한 지수는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것인데 표본 국가들이 많다. 이에 비해 IMF가 단위노동비용을 사용해 계산한 지수는 선진국 26개국만을 대상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래프>를 보면 원화의 CPI 실질실효환율이 그동안 증가세를 나타내진 않았으나, 노동비용을 사용한 실효환율은 35%가량 올랐다. 이 증가폭은 전체 26개국 중 제일 높다. 단위노동비용 상승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악화는 2015년 초까지,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계속되었다. 지난 2년의 경우 현 정부하에서 크게 오른 최저임금의 영향을 반영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유통 등 서비스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복잡한 임금구조 때문에 보수 총액이 상대적으로 높은 제조업도 그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한국 다음으로 실효환율 상승 폭이 큰 곳은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CPI와 단위노동비용에 바탕을 둔 지수가 각각 21%와 29% 오르며 인건비의 증가나 물가의 증가가 비슷하게 환율절상에 기여했다. 대조적으로 경쟁국 일본의 경우 CPI와 단위노동비용 실효환율은 약 12%와 15% 하락하며 오히려 경쟁력이 더 높아졌다. 두 나라 다 우리와 달리 노동비용이 전체 물가와 유사하게 변화했다.
현재 한국의 수출 부진에 대한 바른 해석은 그동안 경쟁력 상실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높았던 것에 가려져 나타나지 않던 저조세가 반도체 호황이 끝나면서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라 밖 사정을 보면 무역 전쟁이나 반도체 수출 부진이 조만간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성장률이 지금 거론되는 전망치의 하한 값보다 더 낮아질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