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 수준이 상향 평준화 돼 기술 우위 경쟁의 의미가 크지 않은데다 수요 성장이 정체기에 접어든 탓이다. 기업들은 제품과 서비스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소비자의 감성, 욕구에 부합 시킬 것인지를 중요한 요소로 판단하고 있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그의 저서 ‘드림소사이어티’에서 앞으로 다가올 사회는 ‘감성 사회’라고 예견하고,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의 가격이나 기능보다는 의미와 상징을 소비 요소로 고려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는 이유는 환경보호라는 차량 교체의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다.
예를 들어 일본 노령층은 하이브리드 프리우스의 최대 소비자였는데, 이들에게 굳이 교체할 필요 없는 자동차를 버리고 신차를 구입하게 만든 것이 바로 환경보호라는 ‘핑곗거리’ 혹은 ‘명분’을 줬기 때문이다.
‘코즈 마케팅’으로 불리는 기업 마케팅 기법도 소비자들에게 ‘착한 소비’란 명분을 주는 사례이다. ‘원인·이유’ 등을 뜻하는 ‘코즈(cause)’와 ‘마케팅(marketing)’을 합친 단어로 소비자는 구매를 통해 기부에 동참하고, 기업은 선한 이미지와 수익 창출을 누리는 마케팅 기법을 말한다. ‘내일을 위한 신발’이란 슬로건의 탐스 슈즈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업계에서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의류 관리기, 건조기 등은 감성과 핑계(명분)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성공 제품들이다.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고심 끝에 의류 관리기와 건조기를 집에 들여놨다. 그는 “싸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가족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에 대응하고 맞벌이 와이프의 가사 노동을 줄이기 위해 구매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가족을 위해서’란 명분이 수백만원을 주저하지 않고 지출하게 만든 셈이다. 더불어 최근 가전 제품들은 집안 인테리어에도 조화를 이룬다. 베란다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과거 세탁기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소비자의 감성을 챙긴 결과물이다.
이 밖에 GS칼텍스와 LG전자가 협력해 복합에너지스테이션을 세우는 것 역시 작은 사치를 통한 감성적 만족감과 연결된다. 전기차의 단점 중 하나는 충전을 위한 시간 소요다. 하지만 자동차를 충전하는 동안 맛있는 커피를 사 먹는다든지, 쇼핑을 하면서 심리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사업모델을 찾은 셈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과잉 만족을 주는 첨단기능 제품들이 주변에 즐비하기 때문에 품질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거리낌없이 지갑을 열 수 있도록 확실한 자기만족과 대외적인 명분을 소비자에게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