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3000원 했던 소주가 이제 5000원입니다. 뉴스에선 출고가 몇십 원 올렸다고 뜨는데, 식당에선 1000원씩 올리는 게 말이 됩니까?"
'소주'는 직장인들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 주는 서민의 술로 불린다. 그런 소주의 몸값 상승이 최근 심상치 않다.
국내 소주 시장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는 하이트진로가 내달 1일부터 공장 출고가격을 6.45% 인상키로 했다. 이에 따라, '참이슬'의 출고가는 현재 1015.7원에서 1081.2원으로 65.5원 오른다.
1위 업체의 인상은 연쇄적인 도미노 현상을 불러온다. 이미 다른 주류회사도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인상 요인이 충분한 만큼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그간의 사례를 볼 때, 나머지 업체들도 하이트진로의 인상 대열에 합류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사실 소비자들은 소주의 공장출고가 인상을 소매점이 아닌 식당에서 느끼게 된다. 65원 오른 소주이지만, 식당에선 몸값이 달라진다. 보통 1000원 단위로 오른다.
여의도 한 증권사에 근무하는 곽모(41) 씨는 “지금은 소주 한 병에 4000원이 대세인데, 이제는 죄다 5000원으로 오를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출고가격 인상은 판매가격 인상과 동의어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의도는 금융권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직장인들 회식 수요가 많고, 임대료도 비싼 편이어서 다른 곳보다 소주 가격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2015년에도 출고가격이 54원 오르자, 판매가격 역시 3000원에서 4000원으로 발 빠르게 올랐다.
◇4000원 소주 13곳 식당 모두… "내달 5000원으로 올릴 것"
그렇다면 이번 공장출고가 인상이 이번에도 식당의 소줏값 인상으로 이어질까.
26일 여의도 인근의 식당가를 찾았다. 오피스 건물 사이사이에 위치한 식당과 술집들은 현재 소주 판매가격에 따라 각기 다른 온도 차를 보였다. 이날 업소에서 만난 점주들의 반응은 명확하게 둘로 나뉘었다. 분기점은 4000원에 파는 곳과 5000원에 파는 곳.
이날 방문한 15개의 여의도 식당과 술집 중 13곳은 소주 한 병을 4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이들 13곳은 다음 달 소주 출고가격 인상에 맞춰 판매가격을 병당 5000원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 대부분은 가게 운영을 위해서는 5000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판매하는 주류 중 소주가 주력인 만큼, 점주들은 출고가격 인상에 민감해했다.
"우리랑은 상관 없는 일이에요."
반면, 현재 소주 한 병을 5000원에 파는 식당 두 곳은 즉답을 피했다. 아마도 병당 6000원에 팔기에는 소비자의 저항이 클 것으로 생각한 듯했다. 사정은 달라도 모두 이윤을 남기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유통비 부담까지… "한 병 팔면 2000원 남아요"
그렇다면 공장출고가 1000원 남짓한 소주 한 병이 식당에서 5000원으로 둔갑하는 이유는 뭘까.
여의도에서 8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최모(56) 씨는 “출고가격이 오르는데 판매가를 그대로 유지하다간 남는 게 하나도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통비도 함께 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
현재 소주(참이슬 기준) 한 병의 공장 출고가격은 1015.7원이지만, 식당과 고깃집은 1300원에서 1500원 수준으로 들여온다. 유통비가 붙기 때문이다. 주류회사가 술을 출고하면 유통업체가 받아 각 식당과 술집으로 이를 유통하는데 이때 붙는 금액은 유통업체마다 제각각이다. 또한 식당‧술집의 규모, 납품 물량에 따라 금액이 다 다르다. 오래 거래를 한 식당에게는 조금 저렴한 유통비를 물리는 경우도 있다.
유통업체가 가격을 조절할 여지는 있지만, 늘 그래왔듯이 출고가 인상은 유통비 인상으로 이어진다. 출고가격이 65원 오르면 인상분의 2~3배인 130~190원이 기존 유통비에 추가로 더 붙을 전망이다. 취재 현장에서 "최근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유통업체도 부담이 많이 늘어나지 않았냐"라는 항변이 나왔던 것을 볼 때, 그 이상 오를 가능성도 충분하다.
결국, 출고가는 65원 올랐지만, 식당은 수백 원 오른 가격으로 소주를 들여오게 된다. 1081원짜리 소주가 유통업체를 거치면서 1500원에서 많게는 1800원에 납품되는 것. 소매점에서 소주 한 병 사는 것과 식당에서 한 병 주문하는 것과의 차이다.
여의도 한 삼겹살집 직원은 “지금은 4000원에 소주 한 병을 팔면 2400원에서 2700원이 남는데, 여기서 부가가치세 10% 빼면 실제로 가져가는 금액은 2000원 초반 수준”이라고 말했다.
높아지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술 값으로 조금이라도 만회하고자 하는 업주들의 고충도 있다.
"보통 안줏값을 보지, 술값을 먼저 안 보잖아요. 네이버같은 포탈 식당 소개에도 술값은 잘 안 나오거든요. 음식값을 올리면 손님이 끊기는데, 임대료는 계속 오르고 뭘로 채우겠어요. 술을 많이 팔아야지요. 이번처럼 출고가 오르면, 가격도 올려야 하는 거고요."
◇한 병에 1만원 받는 일식집 "우린 별 영향 없다"
하지만, 소주 출고가격 인상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곳도 많았다. 대부분 일식집과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이다. 이들은 1~2년 전부터 시장 평균가를 웃돈 가격(7000~1만 원)에 소주를 팔아왔다. 이 때문일까. 이들은 출고가격 인상에 둔감해했다.
한 일식집 점주는 “출고 가격 상승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매가격을 선제적으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출고가격‧유통비 상승을 상쇄할 여지가 충분하다"라고 귀띔했다.
소주 한 병을 7000원에 파는 한 이자카야 점주 박모(48) 씨는 “일식집이나 이자카야는 소주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고 소주가 주력 상품도 아니다”라면서 “소주를 비싸게 팔아 ‘이 돈 주고 소주 먹을 바에야 더 비싼 술을 먹자’라는 심리를 자극, 비싼 술로 유도하는 게 전략”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만난 18명의 여의도 상인들은 다음 달부터 5000원대에 소줏값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대료와 인건비가 오른 상황에서 출고가격까지 오르면 4000원으론 버티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주류업계 역시 빠르면 1~2개월, 늦어도 올해 안에는 '5000원 소주'가 서울 도심 식당가에 정착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그 이상의 상승은 당분간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출고가격 인상에 맞춰 일제히 5000원으로 판매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수순"이라면서도 "5나 10단위로 가격이 수렴하는 시장의 성향을 볼 때, '5000원 소주' 시대는 상당 기간 유지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