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앙처럼 믿고 있는 경기부양 수단은 현재로선 오로지 추경예산뿐이다. 6조7000억 원의 추경은 규모와 내역도 그렇거니와 언제 집행될지도 어정쩡해 보인다. 그래 봤자 ‘언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이 확 와 닿는다.
정부는 경기부진 실적치가 나올 때마다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우리 경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저성장 시대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것은 이미 상식화된 지 오래이고, 이제는 2%라도 될까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현금을 쏟아 붓거나, 공허한 규제완화책을 남발하는 구태의연한 대책으론 먹히지가 않는다. 지금은 정치가 경제의 뒷다리를 잡고, 행정이 나태해져서 생겨난 ‘정치행정의 복합 불황’이다.
실제로 정부의 경제 정책 결정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각종 위원회도 무기력해졌다. 서울 세종로와 태평로 등에 포진한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일자리위원회, 과학기술자문회의, 제4차 산업혁명위원회, 혁신성장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는 각 부처 산하 싱크탱크로부터 20~30명의 전문인력을 지원받아 놓고 맥없이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세상에 회자되기 시작한 지 만 3년이 지났다. 주요국들은 치열하게 대처해 오고 있다. 기업들은 경영혁신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정부는 정책결정 과정을 단순화·투명화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뜯어 고쳤다. 기업의 혁신 성과는 주가 상승으로 나타났고, 정부는 제때 제대로 기능하는 정부로 쇄신됐다. 미국, 일본, 중국, 독일 등을 자세히 보면 3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G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제4차 산업혁명의 최종 승부처는 차세대 이동통신인 5G에 있다는 게 각국의 공통된 인식이다. 우리는 세계 최초의 5G 서비스 국가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중국 화웨이는 정보 홍수 시대를 대비해 2012년부터 ‘노아의 방주 연구소’를 만들어 5G 연구를 해왔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5G 서비스를 개발해 오고 있다. 미국은 5G와 AI가 국가 최고 전략기술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우리는 최초 서비스라는 타이틀을 움켜쥐었으나 아직은 모든 게 푸석푸석하다. 마치 10차선의 최신식 고속도로에 10~20년 전쯤에 나온 자동차들이 다니는 형국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제4차 산업혁명을 가시화하면서 경제화에 연결해 나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태 혁명이 어떻고, 정책이 어때야 한다는 담론 단계에 머물고 있다. 본격적 저성장 시대에 올바른 정책은 일거에 해결하는 ‘원샷’ 정책이 아니며, 가능하지도 않다. 지금은 ‘미적분 방식’이 긴요하다.
예컨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해 만든 산업통상자원부의 ‘제7차 산업기술혁신계획(2019~2023년)’, 과학기술자문회의가 내놓은 ‘정부 R&D 중장기 투자전략(2019~2023년)’, 최근 중소벤처기업부ㆍ교육부ㆍ국토교통부가 공동으로 발표한 ‘도시첨단산업단지 조성 계획’ 등을 제대로 분석해 보는 것이다.
‘미적분 방식’은 제4차 산업혁명을 키워드로 삼아 관련된 연구ㆍ기술개발, 사업화, 시장화의 로드맵을 일일이 그리고 분석한 다음, 단기 성과와 중장기 성과로 분류하고, 이에 필요한 거시정책(금융재정 투입)을 발동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제4차 산업혁명의 조류를 타면서, 기업과 산업의 생산성을 키우고, 행정의 효율화를 실현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게 가능하다.
최근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경제지표 개발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최근 개발한 GDP(데이터 총생산)도 유용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데이터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저성장 시대에 제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현재까지 마련한 각종 제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을 정비하고, 구체적 액션플랜(행동 계획)을 마련해 과감히 실행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