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미중 무역갈등의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은 전 세계에 먹구름을 몰고 왔지만 그 사이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은 ‘그린필드(greenfield)’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 경기에 활력이 생겼다.
그린필드 투자란 용지를 직접 매입하고 공장이나 사업장을 새로 짓는 방식을 의미한다. 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투자를 받는 국가에서 고용창출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3일 펴낸 보고서에서 중국 기업이 2018년 아시아 개발도상국(44개국)에 549억 달러(약 62조 원)의 그린필드 투자를 했다고 밝혔다. 2017년보다 198% 급증했다. 비중도 크게 늘었다. 중국의 그린필드 투자 포트폴리오 중 아시아 개발도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2017년 40%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60%까지 치솟았다. 투자 영역도 다양하다. 베트남 및 말레이시아는 기계 및 전자 제품, 싱가포르에서는 소프트웨어 제품, 필리핀은 금속 및 탄화수소, 카자흐스탄과 방글라데시에서는 섬유 생산에 각각 집중했다.
ADB는 중국의 아시아 개발도상국 투자 확대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대처하는 전략 중 하나였다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에 공장을 세워 미국의 징벌적 관세를 피하려했다는 것이다. ADB 보고서는 “최근 중국이 아시아 개발도상국과 투자 관계를 늘려왔지만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고조된 2018년 그 추세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며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ADB 보고서는 미중 무역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소식이 무성한 가운데 발표돼 더 주목받았다. 협상 타결 임박 소식에도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 갈등이 첨단기술 산업 같은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향후 몇 년 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ADB는 “미중 협상 결과에 따라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그린필드 투자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중국의 그린필드 투자 잠재력이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ADB는 중국의 반도체 부문 투자 확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생산 통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 비중이 큰 대만의 경우 성장이 주춤하다. ADB는 2018년 2.6%였던 대만의 경제성장률이 2019년 2.4%, 2020년 2.0%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8년 경제성장률 7.9%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 8.0% 성장률이 예상되는 방글라데시와 대조적이다.
세계 경제는 미중 무역 갈등 여파로 당분간 살얼음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ADB는 2020년 말까지 세계 GDP가 0.05%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중국 특수를 누리고 있는 아시아 개발도상국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