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길에서 일본 사람들이 점심을 먹은 후 밥값을 계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잖이 어색함을 느꼈었다. 친한 친구들이 만나 함께 식사하는 자리로 보이는데 별로 비싸지도 않은 국수 한 그릇씩 먹고서 각자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는 모습이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이번엔 내가 한턱내지”라는 문화가 있고, 그렇게 한턱내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다 보면 매우 정확하지는 않지만 결국은 서로 공평하게 밥값을 치르는 결과를 낳은 문화가 있기 때문에 국수 한 그릇씩 먹고서 각자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야박하고 옹색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각자 지불’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도 빠른 속도로 퍼져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합당한 이유를 대며 “오늘은 내가 쏜다”는 점을 미리 말하지 않는 한, ‘각자 지불’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야박해진 건지 아니면 허세가 사라지고 실질이 자리 잡게 된 건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각자 밥값을 내는 것처럼 한 가지 목적에 대해 여러 사람이 각기 금품을 내는 것을 ‘갹출’이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醵出’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추렴할 갹(거둘 갹)’, ‘낼 출’이라고 훈독한다.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거두어 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을 ‘각출(各出)’로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각각(各) 낸다(出)’는 의미로 보자면 ‘각출’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원래 단어는 ‘醵出’이었음을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 생각엔 ‘醵’이 ‘酉(=酒:술 주)+豦(=遽:갑자기 거)’의 구조로 이루어진 글자인 것으로 보아 ‘갑자기 내는 술값’을 ‘醵’이라고 한 것 같다. 내가 한턱내겠다며 술집에 갔는데 아뿔싸! 깜빡하고서 지갑을 집에 두고 왔다면 각기 호주머니를 털어 술값을 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여기서 醵出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呵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