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사모펀드(PEF) KCGI와 국민연금의 경영권 압박에 대한 선제적인 조치로 ‘그룹 비전 2023’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알맹이가 빠졌다"며 시큰둥한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KCGI는 '제5라운드'를 예고한 상태다.
14일 한진그룹이 전날 발표한 비전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매각 △제주도 파라다이스 호텔 수익성 제고 등 앞서 KCGI가 한진 측에 제안했던 내용 중 일부가 포함됐다. KCGI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셈이다.
앞서 KCGI는 지난달 21일 '신뢰회복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송현동 부지와 제주도 파라다이스호텔 등 유휴자산 매각으로 부채비율을 낮출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아울러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 거래 시 법률 위반 행위를 사전에 예방하는 내부거래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설치 방안 역시 KCGI의 요구 방향과 일맥상통한다.
다만 비전 2023에는 KCGI가 5개년 계획을 통해 요구했던 '지배구조위원회 설치'는 빠져있었으며, 지난달 31일 KCGI가 주주제안서를 통해 추천한 감사(김칠규 회계사) 선임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진그룹은 한진칼과 (주)한진에 각각 3인 이상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특히 한진칼의 경우 감사위원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3명의 감사위원회 위원을 모두 사외이사로 구성할 예정이다.
감사를 선임할 때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해 3%지만,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시에는 모든 주주의 의결권이 3%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특수관계인 의결권 활용이 가능하다.
이에 KCGI는 다음주 초 한진그룹이 공표한 비전에 대한 공식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5번째 공식서신으로 이에 앞서 KCGI는 올 들어서만 △신뢰회복 5개년 계획 △주주제안 안건상정 △전자투표제 도입 △주주명부 열람 등 4차례에 걸쳐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제안했다.
지난 1일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변경하며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공식화한 국민연금은 한진그룹이 발표한 비전에 대해 반감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진 측이 경영투명성을 위해 마련한 감사위원회 설치, 사외이사 인력확충 및 독립성 강화 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한 위원은 "사외이사의 독립성 강화는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대주주로부터 어떻게 독립을 하는지가 핵심"이라면서 "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본질적으로 어떤 점이 변경됐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감사위원회 설치 역시 자본금 변동에 따른 결정에 불과하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