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품 떨이하다, 신제품 앞길 막을라…” 산업계, 제값 받기 고심

입력 2019-02-1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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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증가→신제품출시→재고떨이→신제품 판매둔화→생산재위축 불황사이클 우려

스마트폰·자동차·반도체 ‘울상’

가동률 낮추고, 출하량 늘리며

경기 수축기 재고소진 ‘안간힘’

직장인 A씨는 상반기 쏟아질 스마트폰 신제품을 사려다 마음을 바꿨다. 올 초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S9이 인하된 가격에 풀렸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A씨는 “곧 출시될 5G(5세대 이동통신) 스마트폰이나 폴더블폰 등 신제품도 기대가 되지만 스마트폰에 큰 돈을 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와 이통 3사는 갤럭시S9의 출고가를 기존 95만7000원에서 85만8000원으로 인하했다. 다음 달 갤럭시S10 출시를 앞두고 갤럭시S9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서다.

갤럭시S8의 출고가는 갤럭시S9 출시 이후에야 인하됐지만 최근 프리미엄폰 시장이 침체하면서 출고가 인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구형 모델에 대한 공시 지원금도 상향했다.

우리나라 제조업 재고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기업들이 재고 떨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고민도 그만큼 커졌다.

재고가 늘자 기업들은 차세대 신제품 출시에 앞서 스마트폰, 자동차, 메모리 반도체 등에 대한 재고 떨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수요증가 대책 없이는 결국 재고 증가 → 수요 창출 위한 신제품 출시→재고 떨이→신제품 판매 부진→생산 위축 →가동률 감소 등 전형적인 불황사이클이 발생할 수 있다.

경기 수축기에 재고 떨이는 신제품 판매 부진을 야기해 소위 ‘스텝이 더 꼬이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재고 떨이를 안 할 수도 없고, 하자니 신제품 판매 둔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모바일 업계 관계자는 “처음 나오는 제품을 사는 건 ‘자발적 베타 테스터’가 되는 것이란 말이 있는 데다 지갑이 얇은 소비자들이 할인된 제품 구매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신제품에 대해서는 1년 이상 구매를 미룰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재고 떨이의 역설인 셈이다.

제품 부피가 크기 때문에 재고를 보관할 장소 확보에도 비용이 크게 발생하는 자동차 업계도 재고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악성 재고 리스트를 전국 우수 영업사원에게 공개해 통상 할인율을 넘어선 기본 11~19% 할인율로 제공한다.

한마디로 우수 영업사원이 더 잘 팔 수 있게 회사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는 제네시스 구형 EQ900이 가장 골칫거리로 알려졌다.

한국지엠의 경우, 판매 급락에 따른 고육책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천 및 창원공장 가동률을 낮춰 평균 30일 재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차 업계 관계자는 “재고를 팔기 위해 무리해서 할인 행사를 하면 중고차 가치가 떨어지고, 신차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도 “재고가 늘어나면 수익성에 비상이 걸리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했던 메모리 반도체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늘어난 재고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작년 4분기 재고는 역사상 최고점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가뜩이나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폭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재고를 밀어내면 추가 가격하락이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재고를 계속 보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 순차적으로 재고를 밀어내면서 출하량을 늘리고 시장점유율을 다시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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