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에 대해서도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기적으로 나온다. 얼마 전에는 전 금융감독원장의 이름이 담긴 보고서에서 정책금융기관들을 지주화하자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정책금융을 총괄하는 지주를 만들고 중복되는 비용을 줄여 ‘비효율적’ 정책금융 집행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이다. 획기적인 주장으로 들렸다.
정책금융 담당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 얘기를 간식거리, 또는 안줏거리로 꺼내 들었다.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현재 정책금융에 비효율적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관련 기관 중 하나로 합쳐도 큰 문제 없는 곳도 수두룩하다. 또는 여론은 정책금융을 세금의 ‘밑 빠진 독’으로 여긴다, 정책금융을 보다 효율화하면 이런 비판이 잦아들 수 있을 것이다 등등.
“근데 그건 너무 공급자의 입장에서만 접근하는 거 아닌가요.” 천편일률적인 대답 중 예상치 못한 의견에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주장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정책금융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통해 불필요한 공급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요자다. 달리 말해 기업들이다. 특히 중소기업, 더 나아가 담보 하나 없는 작은 기업들에 이 효율성은 독이 될 수 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기업들에는 이 은행에서 대출을 못 받더라도 또 다른 은행이 있다는 것, 저 보증기관에서 보증을 거절당했지만 또 다른 보증기관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기회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
요새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보증이나 대출을 받은 기업들을 정리하다 보면 놀랄 때가 많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부실기업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자동차 협력사들은 유동성 위기에서 자유로운 회사를 발견하기가 더 어려운 실정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도 “올해는 자동차 협력업체와 휴대폰 협력업체의 여신을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라고 귀띔했다.
원인이야 어찌 됐건, 누구의 탓을 하건 확실한 것은 지금은 수요자를 위한 경제학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이다. 그게 좀 비효율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더구나 효율성도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파레토 최적’에 대한 얘기에서 빼먹은 부분이 있다. 1명이 99개를 소유하고, 나머지 1개를 99명이 나눠야 하는 상황도 ‘파레토 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