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포함한 수십 개 국가가 23일(현지시간)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과의 정치·외교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극심한 경제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이날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주도하면서 자신이 과도 정부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하고 재선거를 요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성명에서 “과이도는 베네수엘라의 진정한 리더”라며 “그가 베네수엘라의 헌법적 합법성을 회복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미국 경제와 외교력의 힘을 십분 활용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행동을 고려하는지’라는 질문에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답했다.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 상당수와 캐나다 등 20개국 이상과 유럽연합(EU)이 미국처럼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트위터에 “유럽 전체가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세력을 지원하고자 연합할 것”이라며 “마두로와 달리 과이도를 포함한 의회에 베네수엘라 국민이 부여한 민주주의적 권한이 있다”고 밝혔다.
마두로는 “그동안 베네수엘라는 (미국으로부터) 내정 간섭을 많이 받았으나 이제는 존엄성이 있다. 우리 국민은 기꺼이 이 땅을 지킬 의향이 있다”며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대통령을 강요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과이도 의장은 “군부가 마두로 정권에 대한 지지를 거둬야 한다”며 “그렇게 한다면 미래 정부로부터 용서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군부는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확고히 유지했다. 다만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장관과 군 고위 관계자들은 이날 마두로 대통령지지 집회에는 불참했다. 이틀 전 현지에서는 군인 27명이 반란을 꾀한 혐의로 체포되는 등 군 내부에서도 동요가 일고 있다.
FT는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군이 마두로 정권에 반기를 들도록 경제적 압박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미 일부 베네수엘라 정부 인사들에게 자산 동결 등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 미국 고위 관리는 “아직 우리의 제재는 수박 겉핥기 수준에도 못 미친다”며 “마두로가 국회의원들에 해를 가한다면 막대한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마두로 정권에 가장 타격을 줄 제재로는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 전면 금지가 꼽힌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하루 약 4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