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그룹들에게 스포츠는 일종의 '쩐의 전쟁'으로 여겨진다. 투자를 통해 소속팀이 좋은 성적을 올릴 경우 브랜드와 기업 인지도를 높여 매출신장으로 이끌어내고 임직원들의 단결력을 강화 시킬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실제로 재벌 그룹들은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유무형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 삼성, 실력있어도 안티 많으면 'NO'
재계에 따르면 국내 재벌그룹 중 스포츠를 마케팅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곳은 삼성그룹이다. 과거 고 이병철 회장 때부터 이건희 전 회장에게 이르기까지 삼성 총수 일가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남달라 왔다는 평이다.
특검에 이은 경영 쇄신 등으로 이건희 전 회장은 지난달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앞으로도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활동에 주력하며 특히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활발한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삼성그룹의 안팎에서는 스포츠 마케팅의 가장 큰 특징으로 실력파 선수들의 영입에 신경을 쓰고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영입과 관련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삼성은 영입과정에서 안티 팬들이 없고 지역색이 옅은 선수들인지를 철저하게 따지고 있다. 우수한 실력을 통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할지라도 안티가 많을 경우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은 이러한 원칙을 통해 실력과 인기를 동시에 갖춘 구단 운영으로 스포츠와 마케팅을 철저히 연결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의 해외에서도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05년 영국의 축구팀 첼시가 스폰서십을 구한다는 점에 주목해 5000만 파운드(당시환율로 한화 849억 원)의 스폰서십을 맺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삼성은 첼시와의 계약 후 유럽 내에서 2배 이상의 인지도 향상을 꾀하는 발판을 만들어 왔다. 특히 인지도 향상은 주력제품의 상승으로 이어져 투자한 이상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LG , SK, 롯데 야구 사랑 3인 3색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은 각별한 야구 사랑으로 '야구광'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구 부회장은 자청해서 형인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LG트윈스 구단을 넘겨 받아 애정을 쏟아붓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LG가 지난 2006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최하위로 떨어지자 시즌을 마치고 현대 부임시절 8번이나 포스트 시즌으로 이끈 '명장' 김재박 감독을 영입해 팀의 리빌딩을 선언한 데에도 구 부회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LG 관계자들의 후문이다.
구 부회장은 잠실구장에서 LG트윈스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직접 경기장을 찾아 자리를 뜨지 않고 경기를 관전한다. 경기가 끝나면 승패에 관계없이 더그아웃으로 내려가 선수들을 찾아 일일이 격려하는 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구 부회장의 이러한 각별한 야구 사랑에도 LG트윈스의 지난해와 올해 성적은 신통치 않다. LG트윈스의 성적 부진에 따라 구단을 통한 브랜드와 기업 이미지 상승에는 미흡하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LG는 해외에서 활발한 스포츠 마케팅으로 눈을 돌려 국내에서 이런 단점을 만회하는 전략도 병해하고 있다는 게 재계 후문이다.
SK그룹은 스포츠 구단의 운영을 통한 마케팅 보다는 그룹 내 협동과 단결을 유도해 내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존 팀을 인수 개편해서 운영하는 만큼 타 기업의 구단들에 비해 팬 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태원 SK 회장은 2000년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를 창단한 후 야구장을 찾지 않다가 지난해부터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가을 두산 베어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경기장을 찾은 최 회장은 SK 응원석에서 응원단상에 올라 진두 지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SK와이번즈는 지난해 창단 이후 첫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최 회장은 현재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 모든 계열사에 직장인 야구팀을 만들어 매년 SK그룹 리그를 벌일 정도로 스포츠를 통해 그룹 결속과 융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이다.
롯데그룹은 전통의 구도인 부산 시민의 열광적인 성원과 사랑에도 그간 '짠물 투자(?)'로 일관해 성적은 신통치 않아 왔다. 이러한 롯데에 올들어 변화가 생기고 있다. 한국 롯데를 이끌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의 주도하에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인 미국 출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했다.
신 부회장은 구단 마케팅팀과 광고 및 홍보전문 롯데그룹 자회사인 대홍기획이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새로운 마케팅을 연구할 태스크포스트팀을 구성하는 등 그간 의 이미지 탈피해 나선 것.
올시즌 롯데는 이른 바 '로이스터 매직'돌풍속에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롯데의 부산 홈경기 평균 관중은 올들어 현재까지 2만4000여명에 육박하는 등 연일 구름관중을 몰고 다니고 있다. 국내 프로 야구 역사상 첫 흑자 경영을 거두게 되는 구단 1호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 농구사랑 '동부', 비인기종목 핸드볼 육성 '두산'
재계의 대표적인 농구광 총수로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꼽힌다. 2005년 원주 TG삼보 농구단을 인수한 동부는 지난 4월 25일 창단 3년만에 첫 우승을 확정지었다.
강원도 동해 출신인 김 회장은 원주 TG삼보 농구단 인수와 관련해 주변의 만류를 무릎쓰며 "강원도 유일의 프로팀을 소생시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강한 애착을 보여왔다는 게 동부그룹 안팎에서 전하는 말이다.
김 회장은 동부 농구단의 성과를 그룹의 경영전략에도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우승 축하 행사에 참석한 임직원들에게 "동부 농구단의 우승은 감독, 코치와 선수단 모두가 합심해 얻어 낸 성취로 각 계열사의 기업 경영에 접목시킬 수 있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그룹은 총수일가가 프로야구 원년 우승팀인 두산베어스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과 함께 핸드볼 팀 운영 등 비인기종목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 실제 두산은 핸드볼 경기가 치러질 경우 직원들의 단체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비인기종목의 활성화와 함께 그룹 내 직원들의 단결력 강화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듯 재계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그룹 이미지 제고에 따른 매출 상승을 꾀하는 차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재벌 그룹들이 비인기종목 부문에도 보다 활발한 투자와 육성에 나서 국내 스포츠계의 전반적인 발전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도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