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앱’에는 금융위를 향한 성토 글이 줄을 잇고 있다. 금감원 직원 A씨는 윤석헌 금감원장에게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A씨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민간 감독기구를 지키기 위한 비대위 구성을 선언해주기를, 금감원 직원이 아닌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국민 한 사람으로서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A씨는 “앞으로 우리 원에 가져올 일이 단순히 월급 삭감과 승진 제한 정도로 생각하는 직원이 많아 가슴 아프다”며 “큰 변화가 없다면 몇 년 내로 금감원은 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금감원이) 망해야만 한다”며 “한 나라의 감독기구가 이렇게 인식될 순 없다”고 했다.
A씨는 “썩은 감독기구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감독 시스템을 오염시킬 것”이라며 “이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고 이미 20년 IMF 이전 재무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던 무사안일의 감독기구들 대부분이 이런 모습이었다”고 꼬집었다. A씨는 윤 원장에게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원장이 학자로서 평생을 무소불위의 관치금융 타파를 위한 중립적인 감독기구와 선진 감독시스템 마련을 위해 연구했다고 들었다”면서 “이번 사건을 감내한다면 평생 싸워온 관치금융을 부활시키는 악역을 담당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감독기구 예산과 조직, 인사는 감독기구의 ‘전부’라는 게 A씨 주장이다.
금감원은 내년도 예산안에서 1~3급 직원 비중을 현 43.3%에서 35% 수준으로 줄이는 안을 금융위에 제출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30% 이하로 줄이고, 성과급이나 인건비 등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내년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인건비가 전체 예산의 70~80%를 차지하는 금감원으로선 예산을 무기삼아 조직을 옥죄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금감원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감원 노동조합은 3일 성명에서 “금융위는 금감원에 대한 예산심사권을 무기 삼아 길들이기에 나섰다”며 “내년도 금감원 직원의 임금을 동결할 수 있다며 헌법이 보장한 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윤 원장 취임 이후 금융위와 금감원의 주도권 갈등으로 예산을 무기로 삼고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 심의 과정과 케이뱅크 인허가 특혜의혹 등이 발단이라는 것이다. 금감원 국장급 관계자는 “전체 직원의 70% 이상이 취업제한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승진조차 막혀버렸다”며 “이제 50대 초에 팀장급으로 승진하게 돼 직원들 사기가 떨어졌다”고 했다. 금감원 선임급 관계자는 “30년 넘게 평사원을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다”며 “금융위가 예산으로 금감원을 옥죄고 있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금융위는 내년도 예산으로 3조1000억 원을 책정했다. 지난해보다 30.5%(7000억 원) 증가한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