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환의 Aim High] 누리호 실패해라, 두 번 해라

입력 2018-12-04 06:00 수정 2019-01-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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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착륙에 도전할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엘리트가 몰려들었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서류심사를 통해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추린 뒤 면접에서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최악의 실패는 무엇인가?”, “몇 번이나 그런 실패를 겪었나?”

명문학교 졸업장과 화려한 경력은 기본, 극한의 환경을 견뎌낼 신체까지 모두 갖춘 완전체들에게 “너의 흑역사는 무엇이냐”며 봉창을 두드린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NASA는 “실패 따윈 모른다”고 호기롭게 답한 인생 만렙들을 모조리 탈락시켰다. 우주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뜻밖의 도전에 맞서려면 심각한 실패를 반복해 경험하고 극복해온 사람이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괴팍한 기준이 왜 필요했는지는 10여년에 걸쳐 진행된 훈련과정에서 답이 나왔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명언을 남긴 닐 암스트롱은 우주인 후보로 선발된 뒤 끝없이 실패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안착(음모론 사절)하기 8년 전인 1961년에는 초고고도 비행기 X-15를 타고 마하 7의 속도로 8만 미터 상공까지 날아오르려다 실패했다. 1년 뒤엔 T-33 훈련기를 진흙탕에 빠트렸고, 한 달 뒤에는 F-104 전투기를 착륙시키다 동체를 박살냈다. 인류 최초의 우주도킹에 나선 제니미 8호는 우주 한가운데서 빙글빙글 돌다가 임무를 중단하고 조기 귀환했다. 암스트롱은 지겹도록 실패하고 또 실패한 뒤에야 1969년 7월 20일 인류사에 남은 발자국을 찍었다.

사람만 실패했을까. 천재집단 NASA의 스웩은 긴 세월 겪어온 실패의 기록에서 나온다. 은하수를 올려다보는 눈인 허블 우주망원경은 헛발질로 시작됐다. 1970년대 중반 착수한 허블 프로젝트는 약 2조 원이 투입됐는데, 계획이 본격 가동되던 1980년 당시 NASA의 전체 예산이 5조 원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통 미친 짓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1990년 4월에야 발사된 허블은 무사히 궤도에 올랐지만 망원경 거울의 초점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15년의 세월과 돈, 피땀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순간이다.

1986년 1월에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이륙한지 73초 만에 전 세계 수억명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폭발하며 공중분해 됐다. 1992년 9월 발사한 화성 탐사 위성 옵저버호는 궤도에 진입하기 사흘 전 통신이 두절돼 우주미아로 사라졌다. 2003년 2월에는 인류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28번째 비행을 마치고 귀환하다 폭발해 탑승자가 모두 사망했다.

계속되는 처참한 실패에 미국 정부와 언론,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위대한 천조국답게 “도전을 멈추지 말라”며 격려했을까? 1966년 연방정부 전체 예산의 5%에 달하던 NASA 예산은 2017년 0.5%로 10분의 1 토막 났다. 돈이 없어 아폴로 18호~21호 발사를 취소하는 수모도 견뎌야 했다.

달 착륙 이후 30여 년 간 곰 쓸개만 씹던 NASA는 1997년 전설의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호를 통해 실패와 야유로 담금질 된 그들의 내공이 이 세상 것이 아님을 끝내 보여준다. 패스파인더호는 화성 착륙 당시 역추진 방식 대신 에어백을 사용해 감탄을 자아냈는데, 그들이 이 방법을 택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다. 예산 삭감으로 역분사 로켓을 달아줄 자금이 모자라자 NASA의 괴짜들이 짜낸 아이디어가 “에어백을 터트리자”였다고 한다.

패스파인더의 계보를 이어받아 이번엔 화성의 속살까지 들여다볼 예정이라는 탐사선 인사이트호가 무사히 착륙한 다음 날인 지난 달 28일, 누리호 엔진 시험발사체가 날아올랐다. 2009년 8월 첫 발사 때 215초 만에 땅으로 고꾸라진 지 10여 년, 인사이트호가 엘리시움을 향할 때도 여전히 지구 대기권을 못 벗어나는 소박한 도전이다.

하지만 누리호에 싣는 것은 단순히 독자개발한 첨단기술 나부랭이가 아니다. 짐작조차 허락지 않는 미지로 나아가겠다는 용기이며, 비아냥 따위에 꺾지 않는 기상이자 미리 알고 있는 실패에 또 도전한다는 약속이다.

“얼빠진 짓”이라는 아이젠하워의 조소에 굴하지 않던 존 F. 케네디의 다짐이 떠오른다. “우리는 달에 갈 작정입니다. 수월해서가 아니라,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 대단히 어려운 일을 137번, 러시아는 112번 실패했다. 누리호도 열심히 실패해라. 한 만큼 두 번 더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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