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 노사 공동 과당경쟁 태스크포스(TF)팀은 최근 이러한 내용을 담은 합의안 초안을 마련했다. KPI는 은행 직원 성과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다. 통상 매년 초 KPI를 기초로 지점과 본부에 성과급을 지급한다.
노사는 합의안에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예를 들어 그동안 영업 목표를 100% 달성해도 상대평가라 제대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다 같이 목표치를 100% 달성하더라도 1등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구조여서다. 서로 규모가 다른 지점 간 상대 평가로 불공정한 경쟁이 생겼다.
은행마다 100~1000개에 달하는 평가항목도 줄이고 단순화한다. 또 은행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미스터리 쇼핑(창구모니터링) 결과를 경영평가에 반영하지 않는다. 미스터리 쇼핑 제도가 직원 업무 효율성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에서다.
대신 은행과 고객, 직원의 의견을 담은 균형성과표(Balanced Score Card·BSC)를 새 방식으로 제시했다. BSC는 매출액과 수익 등 재무지표뿐만 아니라 고객과 내부 절차, 학습과 성장 등 기업 성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다. 현재 성과에 집중하는 KPI보다 미래지향적인 지표로 꼽힌다.
그동안 KPI는 고객 이익보다는 은행 단기 영업 실적을 올리는 데 편중돼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월 내놓은 ‘국내은행의 영업점 성과평가 방향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국내은행 영업점 평가항목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가 수익성(54.0%)이다. 고객유치(19.0%)와 여수신 규모(13.9%) 항목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성과 경쟁을 부추겨 은행 공공성을 해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 고객에게 유리한 상품이 아닌 은행 수익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하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7월 시중은행 14개를 대상으로 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PI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행원 10명 중 9명은 고객 이익보다 실적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판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은행원 10명 중 7명이 불완전판매를 줄이려면 실적 압박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꼽았다.
노사는 또 지방자치단체와 학교·병원 등 기관 고객에 대해 입찰 경쟁을 자제하기로 공감대를 이뤘다. 노조는 과도한 기부금 등으로 손익이 나지 않고, 직원들과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노사는 이번 주 회의를 열어 최종 합의안을 마련한다. 애초 지난 달 합의를 끝낼 계획이었으나 노사 간 의견 차이로 미뤄졌다. 경영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하던 사측은 최근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이 지난 해부터 KPI 체계 개선을 요구하고, 올해 소비자 보호를 주요 과제로 삼으면서 은행들이 눈치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사측도 합의를 마치고 내년 경영 계획을 짜야 한다.
노사는 다만 고객만족도 평가를 KPI에서 제외하고, 각종 할인 행사와 이벤트 등 마케팅을 노사 합의로 진행한다는 부분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노조 측은 노사 간 합의로 반기마다 정해진 기간에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매번 노조 측 동의를 얻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