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커리지호의 일등항해사(이하 일항사)를 맡고 있는 정의리(36) 씨는 선상 생활을 이렇게 얘기했다. 커리지호와 같은 원양 컨테이너선(미국, 유럽 등지로 장거리 운항하는 선박)에 탑승한 선원은 최소 2달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배에서 생활한다.
기항지(배가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르는 항구)에 들렀을 때 이따금 뭍을 밟긴 하지만, 사실상 1년 중 절반 이상의 시간을 배 위에서 보내게 된다. 배에서도 일요일은 ‘쉬는 날’이지만, 해상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해서 사실상 휴일 개념은 뚜렷하지 않다. 대부분 시간을 동료들과 함께 먹고, 자고, 일해야 하는 것이 배 위에서의 생활이다.
서류 작성과 신원 확인 등 간단한 승선 절차가 끝나자, 정 일항사는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양팔을 걷어 입은 근무복과 며칠간 다듬지 않은 듯한 덥수룩한 수염은 그간 바빴던 배 위에서의 생활을 짐작게 했다.
커리지호에는 서민수(41) 선장을 포함해 21명의 선원이 탑승해 있었다. 동행한 취재기자 2명과 현대상선 본사 직원 1명을 합해 상해에서 출발하는 커리지호에 탑승한 최종 인원은 총 24명이다.
선원들은 각자의 직무와 책임에 따라 소속 부서와 계급이 나눠진다.
갑판부 서열 2위인 일등항해사는 선장을 도와 선박 살림 전반을 이끈다. 컨테이너선인 커리지호의 경우 일항사의 주요 업무는 화물관리다. 이처럼 갑판부에서는 선장부터 삼등항해사까지 업무와 역할 구분이 명확하다.
선박이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도 엔진 등 주요 기기에 대한 관리는 ‘24시간’ 이뤄진다. 이 때문에 김성진(54) 기관장은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식사하고, 빨리 식사를 마친다. 기관장을 도와 선박의 메인 엔진 관리를 담당하는 최형도(33) 일등기관사의 옷이 항상 검은 기름때로 얼룩진 이유도 이와 같았다.
커리지호의 경우 10명의 한국인 선원(선장·사관)과 11명의 필리핀 선원(부원)으로 구성됐다. 이처럼 보통 외국인 선원을 선발할 때는 단일 국가의 인원을 우선 배치한다. 서 선장은 “언어적인 측면에서 의사소통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일간 머물 방은 2~3평 남짓한 원룸 형태였다. 콘센트가 구비된 책상, 옷장, 그리고 침대와 소파가 자리해 있었다. 침대와 소파는 직각 형태로 배치돼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 회사 직원의 말이었다. 그는 “사람에 따라 롤링(정면을 보고 섰을 때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현상)과 피칭(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현상)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는 형태에서 잠을 자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방에는 담배 3갑과 물 한병, 그리고 작업 현장에서 입을 수 있는 근무복 한 벌과 근무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식사는 D덱에서 이뤄졌다. 아침 식사는 오전 7시, 점심 식사는 정오, 저녁 식사는 오후 5시 30분에 시작된다. 식사는 보통 한 시간 내에 마무리한다. 정 일항사는 “웬만하면 식사 시간을 지키고 있다”며 “저녁 식사가 끝나야 조리장과 조리수도 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상 식사의 질은 지상 못지않았다. 선상 생활 3일 차를 맞은 17일에는 미리 준비한 냉동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마치 한국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곳에선 보통 아침은 계란 프라이와 국물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점심과 저녁은 고기를 비롯해 등 비교적 든든한 것을 먹는다.
D덱 한편에는 선원 휴게실이 마련돼 있었다. 선원들은 이곳에서 흡연하거나 카드 게임을 즐기곤 한다. 다만 최근 들어 선원을 대상으로 소량의 와이파이(Wi-Fi)가 지급되기 시작해, 개인적으로 방에서 휴식하는 선원들이 늘어나 이곳의 풍경도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이 밖에도 숙소가 위치한 B덱의 끄트머리에는 좁지만,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반대편 끝에는 노래방 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무선 리모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직접 책을 보면서 번호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 있었으나, 그 점을 제외하면 선상 노래방의 음질이나 수록곡 수 등 여건은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