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승선기] “배는 직장이면서 집... 선원들은 동료이자 가족”

입력 2018-11-2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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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커리지호의 선원들. 왼쪽부터 정의리 일항사, 서민수 선장, 김성진 기관장, 최형도 일기사. 사진=안경무 기자.
▲현대상선 커리지호의 선원들. 왼쪽부터 정의리 일항사, 서민수 선장, 김성진 기관장, 최형도 일기사. 사진=안경무 기자.
“이곳은 직장이면서 집입니다. 한 배에 탄 선원들은 동료이자 가족이고, 친구입니다.”

현대상선 커리지호의 일등항해사(이하 일항사)를 맡고 있는 정의리(36) 씨는 선상 생활을 이렇게 얘기했다. 커리지호와 같은 원양 컨테이너선(미국, 유럽 등지로 장거리 운항하는 선박)에 탑승한 선원은 최소 2달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배에서 생활한다.

기항지(배가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르는 항구)에 들렀을 때 이따금 뭍을 밟긴 하지만, 사실상 1년 중 절반 이상의 시간을 배 위에서 보내게 된다. 배에서도 일요일은 ‘쉬는 날’이지만, 해상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해서 사실상 휴일 개념은 뚜렷하지 않다. 대부분 시간을 동료들과 함께 먹고, 자고, 일해야 하는 것이 배 위에서의 생활이다.

▲적재를 앞둔 화물(컨테이너)이 항만에 쌓여 있는 모습. 사진제공=안경무 기자.
▲적재를 앞둔 화물(컨테이너)이 항만에 쌓여 있는 모습. 사진제공=안경무 기자.
기자는 15일 현대상선의 8600TEU급 컨테이너선인 커리지호에 탑승했다. 컨테이너선은 화물창과 갑판에 컨테이너 화물을 선적해 운송하도록 설계된 선박이다. ‘TEU’는 컨테이너선 적재 용량을 뜻하는 단위로 1TEU는 배가 ‘20피트 컨테이너 1대’를 적재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한 선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모든 것을 이 컨테이너선으로 옮긴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을 운반하는’ 컨테이너선은 항공 운송과 철도 운송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가장 많은 화물을 저렴하게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다.

서류 작성과 신원 확인 등 간단한 승선 절차가 끝나자, 정 일항사는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양팔을 걷어 입은 근무복과 며칠간 다듬지 않은 듯한 덥수룩한 수염은 그간 바빴던 배 위에서의 생활을 짐작게 했다.

커리지호에는 서민수(41) 선장을 포함해 21명의 선원이 탑승해 있었다. 동행한 취재기자 2명과 현대상선 본사 직원 1명을 합해 상해에서 출발하는 커리지호에 탑승한 최종 인원은 총 24명이다.

선원들은 각자의 직무와 책임에 따라 소속 부서와 계급이 나눠진다.

▲선장이 항해를 지휘하는 장소인 선교(브릿지). 사진=안경무 기자.
▲선장이 항해를 지휘하는 장소인 선교(브릿지). 사진=안경무 기자.
‘선장’은 편제상 갑판부에 속한다. 갑판부는 선박의 조종·하역(짐을 싣고 내리는 일)·화물의 보관 등을 관장하는 부서로 항해사가 근무하는 곳이다. 항해가 시작되면 선장은 선교(브릿지)에서 일하며 전반적인 선박 운항을 관리한다. 이 때문에 커리지호에서 선장의 방은 브릿지 아래층인 G덱(Deck)에 위치해 있었다.

갑판부 서열 2위인 일등항해사는 선장을 도와 선박 살림 전반을 이끈다. 컨테이너선인 커리지호의 경우 일항사의 주요 업무는 화물관리다. 이처럼 갑판부에서는 선장부터 삼등항해사까지 업무와 역할 구분이 명확하다.

▲기관실에 대해 설명하는 김성진(54) 기관장. 사진=안경무 기자.
▲기관실에 대해 설명하는 김성진(54) 기관장. 사진=안경무 기자.
기관부는 선박 기관의 정비와 운전, 연료의 보관과 사용 등을 관장하는 부서다. 이들은 배가 무사히 항해할 수 있도록 갑판 아래에서 엔진을 비롯한 내부 시설을 매일 점검한다.

선박이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도 엔진 등 주요 기기에 대한 관리는 ‘24시간’ 이뤄진다. 이 때문에 김성진(54) 기관장은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식사하고, 빨리 식사를 마친다. 기관장을 도와 선박의 메인 엔진 관리를 담당하는 최형도(33) 일등기관사의 옷이 항상 검은 기름때로 얼룩진 이유도 이와 같았다.

▲커리지호의 조리장과 조리수가 식사 준비에 한창이다. 사진제공=안경무 기자.
▲커리지호의 조리장과 조리수가 식사 준비에 한창이다. 사진제공=안경무 기자.
항해사와 기관사 말고도 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이 있다. 바로 선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조리장과 조리수다. 정 일항사는 “음식은 항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조리수가 조리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어 솜씨를 더 발휘하는 듯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커리지호의 경우 10명의 한국인 선원(선장·사관)과 11명의 필리핀 선원(부원)으로 구성됐다. 이처럼 보통 외국인 선원을 선발할 때는 단일 국가의 인원을 우선 배치한다. 서 선장은 “언어적인 측면에서 의사소통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승선기간 동안 머물렀던 숙소. 책상과 1인용 침대, 소파가 놓여 있다. 사진=안경무 기자.
▲승선기간 동안 머물렀던 숙소. 책상과 1인용 침대, 소파가 놓여 있다. 사진=안경무 기자.
선박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정 일항사는 기자를 숙소로 안내했다. 숙소는 B덱에 위치해 있었다. 덱은 지상에서의 ‘층’ 개념으로 알파벳 순서(A~G)로 이어진다.

4일간 머물 방은 2~3평 남짓한 원룸 형태였다. 콘센트가 구비된 책상, 옷장, 그리고 침대와 소파가 자리해 있었다. 침대와 소파는 직각 형태로 배치돼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 회사 직원의 말이었다. 그는 “사람에 따라 롤링(정면을 보고 섰을 때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현상)과 피칭(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현상)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는 형태에서 잠을 자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방에는 담배 3갑과 물 한병, 그리고 작업 현장에서 입을 수 있는 근무복 한 벌과 근무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식사는 D덱에서 이뤄졌다. 아침 식사는 오전 7시, 점심 식사는 정오, 저녁 식사는 오후 5시 30분에 시작된다. 식사는 보통 한 시간 내에 마무리한다. 정 일항사는 “웬만하면 식사 시간을 지키고 있다”며 “저녁 식사가 끝나야 조리장과 조리수도 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상 식사의 질은 지상 못지않았다. 선상 생활 3일 차를 맞은 17일에는 미리 준비한 냉동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마치 한국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곳에선 보통 아침은 계란 프라이와 국물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점심과 저녁은 고기를 비롯해 등 비교적 든든한 것을 먹는다.

D덱 한편에는 선원 휴게실이 마련돼 있었다. 선원들은 이곳에서 흡연하거나 카드 게임을 즐기곤 한다. 다만 최근 들어 선원을 대상으로 소량의 와이파이(Wi-Fi)가 지급되기 시작해, 개인적으로 방에서 휴식하는 선원들이 늘어나 이곳의 풍경도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이 밖에도 숙소가 위치한 B덱의 끄트머리에는 좁지만,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반대편 끝에는 노래방 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무선 리모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직접 책을 보면서 번호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 있었으나, 그 점을 제외하면 선상 노래방의 음질이나 수록곡 수 등 여건은 훌륭했다.

▲B덱 한편에 마련된 운동 공간. 사진제공=안경무 기자.
▲B덱 한편에 마련된 운동 공간. 사진제공=안경무 기자.
배의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니, 어느새 승선 일정은 마무리됐다. 상해 항에서의 체선(배가 정해진 기일을 넘어 항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예상보다 길어져 계획된 일정보다 하루가량 배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지루할 새는 없었다. 배는 육상만큼 풍요롭진 않았지만, 그곳 역시 삶의 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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