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미신 경제학과 중년 실업자들

입력 2018-1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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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미국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했던 공화당이 40개 가까운 의석을 민주당에 내주며 집권당이 패했다. 그런데 유세 기간에 지난 2년간의 중요한 집권당 업적인 큰 폭의 감세에 대한 자랑은 들리지 않았다. 감세의 긍정적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예상되는 정부 부채를 크게 늘렸다는 비판적 평가가 더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재임 기간에 회자되었던 ‘감세가 (경기확장을 통해) 세수를 높인다’는 래퍼 곡선은 증거가 빈약해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념적 ‘미신경제학(voodoo economics)’ 이론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캔자스주의 공화당 소속 지사가 이 철 지난 이론을 근거로 대규모 감세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실험을 밀어붙이며 관심을 받았다. 결국 주정부 재정을 위기로 몰아넣었고, 보수성향이 짙은 주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2년간 현 정부가 추진한 ‘임금 인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한국의 좌파 미신경제학 이론은 미국 우파의 래퍼 곡선과 쌍벽을 이루어 기록에 남을 것 같다. 고용과 각종 경제 지표들이 연초 이후 하향세를 이어가며 우리 경제의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보통 경제가 어려워지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채근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을 수단으로 소득분배를 개선하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정책을 펼치면서 작금의 경제 부진을 키운 정부에 이런 주문을 하는 것은 병을 깊게 한 의원에게 “약을 내 놓으라”고 청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반등할 것이라는 정부의 관측은 근거가 희박한 희망사항으로 보인다. 그래도 수출은 잘되고 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수출이 잘되면 일자리가 늘고 온기가 퍼지던 것은 국내에서 완제된 공산품이 수출되던 때의 추억이다. 지금 우리 수출의 상당 부분은 기술집약적 부품이나 반제품으로, 해외에서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나가는 중간재이다. 자료가 희소해 구체적 규모를 알 순 없으나 우리의 많은 대기업들이 국내에서 생산된 부품과 반제품을 해외의 공장으로 보내 완제품을 만들며 국내 모회사와 해외 자회사 간 기업 내 무역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보며 지금의 수출 증가는 국내의 일거리를 들고 해외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반길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이런 행태와 우리 수출구조의 변화는 지금 정부가 내세운 목표 간에 부조화 딜레마를 안긴다. 국내의 고용과 투자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들이 국내에서 생산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관점에서 보면 주문이 다를 수 있다. 기업들이 어떻게 하든지 이익을 창출해 배당을 늘려야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의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덜 내고 더 받을 수 있도록 국민연금 제도를 개선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을 감안하면 수익률 제고는 절실한 과제이다.

대형 사업장의 높은 임금과 강성 노조가 기업들의 해외 생산을 부축인 것은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기업의 해외행을 막으려 지난 정부는 기업들에 애국심을 호소하며 국내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지금 정부도 다르지 않다. 만약 괘씸죄가 중죄가 아니었다면 이런 주문을 받는 기업의 경영자들은 기업활동을 해외로 내모는 노조와 정부는 왜 그리 애국심이 없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위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경제를 악화시킨다고 불편해한다. 국내외 여건이 어렵고 향후 개선되기보다 더 악화할 개연성도 높다. 경우에 따라 지금 위기의 초입이라는 관점에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악화한 40·50대의 고용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얼마 전까지 많은 중년 이직자들은 자영업 창업을 자구책으로 삼았으나 이제 요식업 한파로 이런 방안은 막혔다. 최저임금 ‘철퇴’를 휘두른 한국판 미신경제학의 피해자들이다.

소득이 없어도 가계 지출을 대폭 줄이는 것은 어렵다. 공과금, 대출금 연체와 같은 정보를 이용하여 이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효과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부 홍보처럼 모두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이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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