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가 한국지엠 사태와 관련, 쓴소리를 하자 KDB산업은행 측이 비공식 자리에서 한 푸념이라고 한다. 한국지엠이 무슨 일만 생기면 국내 1위 로펌 ‘김앤장’을 쓰는데 무슨 수로 이기겠냐는 소리다. 연구개발(R&D) 신설 법인을 둘러싼 산은과의 법적 분쟁에서도 김앤장이 한국지엠을 맡았다.
그렇다면 산은은 김앤장에 대응조차 어려운 소위 ‘싸구려’ 로펌을 쓰는가. 산은을 맡은 법무법인 세종은 국내 5대 로펌 가운데 하나다. 1시간 자문에 수십만 원이 넘는, 날고 기는 변호사들이 모여 있다. 한국지엠을 상대로 소송하려면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을 내야 할 것이다.
로펌 탓을 하기엔 산은은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선 산은이 한국지엠 R&D 법인 분리 계획을 미리 인지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동걸 회장은 “4월 한국지엠이 한국 정부와 경영 정상화 협상을 하던 막바지에 R&D 법인 분리를 거론했다”며 “논의 자체를 거절했다”고 했다.
R&D 법인 분리 가능성을 알고도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협상 당시부터 ‘비토권(거부권)’을 위해 차등감자를 포기하는 등 한국지엠에 끌려다닌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해당사자 고통 분담’과 ‘부실기업 독자 생존’이라는 이 회장 구조조정 원칙도 한국지엠엔 적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보한 비토권은 써보지도 못했다.
이 회장은 국감장에서 억울해했다. 정무위 의원들의 질문에 “그러나…”로 맞받아쳤다.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지난 4~5년 이전 정부에서 산은 의사와 관계없이 인수한 것”이라고 했다.
KDB생명의 경우 “애당초 인수하지 않았어야 할 회사”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은 그동안 정부 정책을 앞장서서 실행하고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한국지엠도, 다른 구조조정 기업도 억울하다고 남 핑계를 하기엔 맡은 책임이 무겁다. 이 회장으로선 자기 임기 전에 있던 일이라 억울하겠지만, 산은이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다. 언제나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