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 시내에서 30분가량 택시를 타고 에어로시티(Aerocity)로 향하자, 빌딩숲이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이 펼쳐졌다. 에어로시티는 공항관련 시설만 입주 가능한 상업지구다. 고도제한에 걸려 기껏해야 10층이 채 되지 않는 건물들로 구성됐지만 잘 정돈된 도로에 새로 지은 빌딩은 서울 도심과 별다를 바 없다. 기업은행 뉴델리 지점은 2015년에 새로 지어진 월드마크2(World Mark2) 4층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12일 만난 김문년 기업은행 뉴델리 지점장은 “인도는 세계 3대 차 생산국”이라며 다즐링 차를 내줬다. 김 지점장은 기업은행 지점 전환 이듬해인 2016년 1월부터 인도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다. 김 지점장은 “I am Indian, not Korean”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피부가 시커멓게 타서 인도 직원하고 비교해보면 구분이 안될 것”이라며 3년 차 주재원 답게 여유로운 농담을 건냈다
집무실 테이블에 앉자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10월 첫째주 금요일, ‘STAFF PARTY’라는 메모와 함께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있다. 김 지점장은 “인도 직원들이 흥이 많은 만큼 반년에 한번 정도 클럽을 빌려 파티를 한다”며 "4시간 동안 식사도 하지 않은 채로 지치지 않고 춤을 춘다"고 설명했다. 은은한 다즐링 향과 함께 그의 인도 생활기를 들었다.
-인도 시장 확대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을 꼽자면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이다. 계좌 하나를 개설하려고 해도 필수 서류가 많고 복잡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달러화(USD) 대출은 거의 불가능하고, 루피화(INR) 대출은 금리가 높아 여신에 대한 수요가 별로 없다는 점도 어렵다. 한국과 인도의 담보에 대한 인식(동산담보 등)과 규정 차이도 크다."
-인도 금융당국의 규제가 강하다고 들었는데
"영국식 영향으로 강력한 중앙은행의 규제가 있다. 당국이 분기마다 한 번씩 체크를 한다. 특히 우선지원분야대출(PSL)은 전체 여신의 36%를 농업, 중소기업 등에 대출을 해야 하는 규정인데, 기업은행은 주로 거래하는 대상이 중소기업이다보니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감안이 된다."
-현지에서 영업 할 때 한국과 가장 다른 부분은 무엇인가
"기업이 신규 계좌를 틀 때, 해당 기업의 모든 여신거래 은행으로부터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기존 거래 은행이 승인을 내주기 전까지는 새로 거래를 트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도 담보법상 N분의 1 개념을 채택하는 빠리빠소 조항(Pari Passu Clause)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동등대우조항이라는 뜻으로 차주가 무담보채권자에게 다른 무담보채무를 우선적으로 상환하지 않고 동등하게 취급하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조항이다."
-기업은행 뉴델리 지점만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는 ‘찾아가는 서비스(Doorstep Service)’를 실천한다. 인도 전역을 찾아다니며 한국 진출 기업과 현지 기업을 유치한다. 이번주(9월 둘째주) 화, 목은 그레이트 노이다를 수요일은 남쪽 구르가온에 위치한 업체를 방문한다. 고객만족(CS) 부분에 있어서도 3S(Smile, Speed, Sincerity)를 실천해서 인도 현지은행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현지 중소기업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지 궁금하다
"LG전자 협력회사인 신광전자, 삼성전자 제2공장 건설업체 EIE, YH인테리어, 의류 중계업을 하는 성지트레이딩 등 한국에 법인이 없는 현지 중소기업을 발굴했다. 또 삼성전자, LG전자의 한국 협력회사와 거래하거나 에어로시티 월드마크 건물에 입주해있는 인도 중소기업 등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도에 진출한 기업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매우 느리다는 것이다. 인도 비즈니스는 자기네들이 받는 건 최대한 빨리 요구하고, 주는 건 최대한 늦게 주는 게 특징이다. 기업들이 인도 법인을 신청하면 법인 허가를 받는데만 해도 2~3개월이 걸린다. 한국 기업들이 들어와서 굉장히 고통을 많이 받는 부분이다. 최근 에어로시티 근처에 300평가량 공사수주를 낸 한 한국 건설업체가 중간 대금을 받는데 1년 반이 걸렸다. 한국 기업은 성질이 급하니까 자기 돈 들여서 일단 삽을 뜬다. 약속이라는 개념이 희미하다. 계약서류에는 기한이 늦어지면 연체료를 내야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우리가 ‘을’의 입장이다보니, 연체료는 고사하고 원금이라도 받으면 감사한 처지다."
-한국 국책은행으로써 어떤 지원을 해주고 있는가
"진출 초기에는 법인설립, 자본금 송금, 세무&회계, 인사 등 한국과 다른 현지 규정에 대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IBK 뉴델리 지점은 ‘둥지(Nest) 마케팅’으로 법률, 세무, 인사 컨설팅 업체를 통해 무료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인도에 진출한 휴대폰 케이스 전문 업체 ‘모베이스’에 △현지법인 인수 △추가자본금 소급 △현지운용자금 지원 △수출입송금 지원 △공장구입 관련 컨설팅 등을 제공했다."
-현지 직원과 일하면서, 문화 차이를 느낄 때가 있다면
"몇몇 직원은 지각하는 게 일반화돼있다. 최근 8달 동안 28번이나 지각한 직원도 있다. 오죽하면 ‘LATE COMMING NOTE’를 만들어서 적고 있겠나. 3번까지는 ‘EXCELLENT(훌륭함)’으로 표시한다. 카스트 제도가 아직 잔존해 예를 들어 대리보다 과장이 낮은 신분일 때 서로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또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다. 다른 곳에서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하면 미련 없이 퇴사하는 모습도 한국과 달라 익숙지 않다."
-기업금융뿐만 아니라 리테일 영업 확대도 고려하고 있는지
"현재는 한국 종업원들의 급여 해외송금 및 예적금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앞으로 체크카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인도 종업원의 급여이체 확보를 기반으로 홈론(Home Loan), 신용대출 등 기반을 확대할 예정이다.
-앞으로 지점은 어떻게 늘려나갈 계획인가
"중소기업이 주로 가는 곳에 간다. 남부 첸나이 혹은 벵갈루루 지역을 보고 있다. 지점 승인 인가에 2년 정도가 걸리다보니 올해나 내년 정도에 신청을 해야할 것 같다. 빠르면 2020년에 두번 째 지점이 생길 것으로 본다."
-인도에 진출하려는 중소기업에 전할 말이 있다면
"인도가 확실하게 기회의 땅인 것은 분명히 맞다. 한국 기업이 아시아 지역에서 가야할 마지막 남은 곳이다. 반드시 와야 하지만 엄청난 고생을 해야 한다는 점은 감수해야 한다.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 와서도 일종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