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명함(名銜) ②

입력 2018-10-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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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명함이 자신을 소개하는 주요한 방편이다 보니 처음 인사를 할 때면 으레 명함을 주고받는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명함을 드리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 윗사람이 그 명함을 살펴본 뒤 자신의 명함을 주는 것이 명함 교환의 일반적인 예법이다.

이처럼 명함은 자신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위가 있는 사람은 더러 뻐기면서 명함을 내놓지만 자신의 신분이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명함 내놓기를 꺼릴 때가 있다. 전자는 명함을 뿌리거나 돌리는 경우가 많고, 후자는 ‘명함도 못 내미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명함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소개하는 쪽지일 뿐인데 신분에 따라 상황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가 유난히 심하다고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명함의 발생이 행군하는 병사의 입을 막기 위해 입에 물리던 재갈과 같은 대나무 조각에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굳이 명함을 들고서 거드름을 피울 필요도 없고 풀이 죽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각자 자신의 명함 앞에서 떳떳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열심히 살면 된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을 명함이라는 재갈을 문 채 사는지 모른다. 이름이 곧 자신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잘 가꾸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름이 빛나는 삶을 살면 좋겠지만 최소한 더러운 이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럽게 산 이완용은 그의 후손들까지도 그가 물었던 재갈을 물고 살아야 하지 않는가!

중국 송나라 때의 명문장가 구양수(歐陽脩)는 ‘추성부(秋聲賦)’라는 작품에서 가을이 오는 모습을 ‘함매질주(銜枚疾走, 銜:재갈 머금을 함, 枚:낱 매, 疾:빠를 질, 走:달릴 주)’라고 표현했다. 대나무 낱조각 재갈을 문 병사들이 빠르게 이동하듯 가을은 그렇게 소리 없이 빠르게 온다는 뜻이다. 우리가 명함이라는 재갈을 물고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인생의 가을도 그렇게 빨리 다가올 수 있다. 오늘의 내 일, 내 명함에 충실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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