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집값 급등으로 가계대출을 옥죄면서 시중은행의 새로운 경영 전략으로 ‘중소기업 대출’이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우량 중소기업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출혈 경쟁’을 우려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 8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잔액(개인사업자 대출 포함)은 329조7968억 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301조4459억 원보다 9.4% 증가한 수치다. 올 상반기 6% 수준에 불과한 가계대출 증가율에 비해 높다.
국민은행이 8조9890억 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다. 신한은행 7조2704억 원, 하나은행 6조8212억 원, 우리은행 5조2703억 원 순이었다. 전체 원화 대출의 37~40% 수준이다.
시중은행은 그동안 가계대출에 주력해왔다. 예대차익으로 이득을 얻기 쉽고, 부동산담보대출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기업대출도 주로 신용이 탄탄한 대기업 위주였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늘어나는 가계대출에 경고장을 보내고, 최근 집값 상승으로 대출 규제를 더욱 강화하자 경영 전략을 바꿨다. 시중은행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중소기업 대출을 늘려왔다. 특히 올 하반기부터 적극적으로 중소기업 대출에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도 한몫했다.
시중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에 집중하자 전통적으로 이 분야 강자인 IBK기업은행은 잔뜩 긴장한 모양새다. 우량 중소기업을 지키려는 특별대출 금리 프로그램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다른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에 눈을 돌리면서 우리가 거래하는 우량기업을 주 영업 타깃으로 세웠다”며 “지금까지 중소기업들과 관계를 잘 유지해왔지만 다른 은행이 갑자기 좋은 금리를 제시하면 귀가 솔깃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실제 일부 은행은 우량 중소기업에 손익분기점(BEP) 수준의 금리를 제시하기도 한다. A은행 임원은 “좋은 중소기업에 대해 은행 마진을 대폭 줄여서 금리를 BEP 기준까지 해준다”며 “각 은행이 우량 기업을 데려오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 대출뿐만 아니라 직원 급여 이체 등 수익원을 다양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B은행 임원은 “좋은 기업을 우대해 장기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중소기업 시장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
시중은행은 내년에도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목표액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올해 대비 7~9% 이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은행의 한 임원은 “가계대출을 못 하고 정부도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어서 중기대출로 갈 수밖에 없다”며 “구체적인 규모는 정하지 않았으나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출혈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7월 대기업대출 연체율이 0.01%포인트 올랐지만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1%포인트 상승했다. C은행 임원은 “무조건 중소기업을 지원하면 한계기업이 살아남아 문제가 된다”며 “막무가내식으로 대출을 늘리면 부실이 생기고 다른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