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재판 이야기를 오늘날 시각에서 풀어낸 현직 판사가 있다. 서울고법 박형남(58ㆍ사법연수원 14기) 부장판사 13일 "대법관 토머스 모어는 사법 독립을 지키기 위해 왕의 말을 거역했다"며 "모어의 재판은 지금의 사태(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따른 사법 불신)와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저서 '재판으로 본 세계사'에 실은 토머스 모어 재판 이야기가 현재와 비교할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박 부장판사는 저서에서 '판사들은 국왕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핑계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토머스 모어의 말을 인용하며 '이 말에 놀란 사람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판사들뿐이고, 시민들은 당연한 것을 새삼스럽게 고백하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그래서일까. 박 부장판사는 책을 발간한 이유에 대해 "너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원과 재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지금, 국민들에게 역사 속 재판을 곱씹어보며 법의 원리나 이념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말하고자 했다"면서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가 소개하는 역사 속 재판들은 모두 현실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로마 공화정을 전복하는 계획을 세웠던 '카틸리나 재판'은 내란선동죄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세일럼의 마녀재판'은 학력 위조 의혹 논란으로 마녀사냥 피해를 본 가수 타블로의 이야기와 궤를 같이 한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법으로 규정한 '로크너 재판'은 '규제는 악'이라는 신자유주의 관점을 다시 돌이켜보게 한다.
박 부장판사는 "지금은 세계사적 재판에 현실을 투영했지만, 퇴임 후에는 우리나라 재판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며 자신의 작은 소망을 전했다.
그는 "한국 현대사가 70년이 됐다.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며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하는 등 정치, 경제,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며 "달라진 환경이 판결에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분석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