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국민들에겐 다소 생소한 문장이다. '금고·70조 원'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단어들이 아니다. 하지만 은행권에선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이슈다. 지방회계법상 지방자치단체와 관공서는 특정 은행을 지정해 소관 현금과 유가증권의 출납, 보관 등의 업무를 맡겨야 하는데 이를 통상 '금고'라 한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별로 연간 수조 원이 오가는 세입금 수납과 세출금 지출, 유휴자금 보관을 관리하는 주거래 은행을 선정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 해 예산만 32조 원에 달하는 서울시 금고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계획이 잡힌 입찰 규모만 70조 원에 달한다.
은행 입장에선 지자체와 대형 공기관 금고영업은 유독 눈독을 들이는 거래로 꼽힌다. 수조 원 예산을 대출 재원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본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는다. 또 해당 기관 세입·세출 업무를 맡으며 우량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지자체 공무원과 가족을 잠재적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공무원은 신용도가 높아 금융권에서 최우량 고객이다. 여기에 지자체 산하기관으로 영업망을 확대하기도 쉽다. 은행들이 전사적으로 지자체 금고 유치에 나서는 목적이다.
하지만 지자체 금고지기 자리엔 '명(明)'이 있다면 '암(暗)'도 공존한다. 은행의 이미지 제고와 연계영업의 이점이 있는 반면 거액의 출연금과 협력 사업비 지출 부담이 뒤따른다. 일각에서는 지자체 금고지기 유치전이 수백억 원의 판돈이 오가는 도박판이란 지적도 나온다. 출연금이나 협력사업비 명목으로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씩 베팅에 나서는 상황 때문이다. 일선 현장에서는 은행들의 능력이 대동소이해 결국 판돈에 따라 결정된다는 후문이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복수금고 체제까지 도입해 돈벌이에 혈안이다.
지차제 금고로부터 매년 받는 협력 사업비는 사실상 베일에 가려 있는 돈이다. 출연금의 명분이나 성격·용도 등이 투명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과거 지역주민 사업에 썼다지만, 일부 지자체는 이 수입을 아예 세입에 포함하지 않아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지적도 받았다. 지자체 금고 유치전이 눈먼 쌈짓돈을 챙길 수 있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방증이다. 또 부적절한 로비와 금고 담당 공무원의 갑질 및 부정 청탁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로 취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담당 공무원에게 밉보이는 순간,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어 검은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은행들의 출연금은 사실상 합법적 리베이트로 해석되고 있다. 비싼 출연금을 내지 않으면 기존 사업자의 문턱을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들의 지자체 금고 유치전이 불편한 이유는 '눈먼 돈'이 고객들의 예금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은행들이 고객 자산을 눈먼 돈처럼 사용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금고 운영권을 둘러싼 금품 로비나 출연금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a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