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각각 하나의 거대 IT 기업에 좌지우지되며 시장 왜곡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거대 기업의 주가 하락은 곧바로 증시 전체 하락으로 이어져 개인과 기관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텐센트, TSMC는 각각 한국, 중국, 대만 증시에서 월등한 시장 지배력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알리바바그룹과 바이두까지 합하면 이들 5개 기업은 MSCI 신흥시장지수의 19%를 차지한다. 캐롤린 유 마우러 BNP파리바자산운용 애널리스트는 “가장 큰 이익을 내는 기업이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만약 그들이 기대만큼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투자자들은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삼성은 시가총액이 약 3000억 달러(약 338조4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코스피지수 시총 2위부터 상위 11개 상장사의 시총을 합한 것보다 큰 액수다. 삼성은 올해 주가가 10% 하락해 코스피를 7% 이상 떨어트리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줬다.
홍콩 증시에서 텐센트의 시총은 4240억 달러로 2위인 중국공상은행보다 50% 많은 액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텐센트의 주가는 1월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14% 가까이 하락하며 최악의 실적을 보였다. 이로 인해 112억 달러 규모의 홍콩 트래커펀드가 타격을 입고 올해 5.7% 하락했다. 시총 2080억 달러의 TSMC도 시총이 2위 기업과 4배가량 차이가 난다.
3사의 시총은 1월 1조1000억 달러에서 최근 9240억 달러로 줄었다. WSJ은 세계적인 셀오프(Selloff·대규모 매도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 리처드 골린스키 BOS 수석 투자 담당자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저평가됐던 주식으로 자금을 이동할 기회”라며 “필수 소비재와 에너지주 등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나스닥 대장주인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변동성이 크지 않은 것과 대조적인 결과다. FAANG 기업은 S&P500지수 가중치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두가 MSCI 중국지수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적은 비율이다. S&P500지수는 최근 페이스북과 넷플릭스의 주가 하락을 견뎌냈으며 올해 들어 상승세를 보였다.
증시가 거대 기업에 집중된 탓에 기관들도 포트폴리오를 짤 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모건 하팅 얼라이언스번스틴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올해 들어 자신의 포트폴리오에서 삼성과 텐센트, TSMC의 비중을 줄였다. 그는 “중국 증시의 소비자 중심 기술주에 과도하게 집중하지 않도록 신중해지고 싶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