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 원유시장의 셈법이 복잡해지게 됐다. 미국이 중국과 등을 지면서 시장역학구도에도 변화가 일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시장에서 에너지 분야를 주도하겠다며 '에너지 주도권(energy dominance)’ 시대를 선언했지만 정작 미국산 셰일유의 최대 고객인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면서 주도권은커녕 중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힐 처지에 놓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산 셰일유의 새 고객 중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소비량이 많다. 중국은 지난 2년간 수요가 200배나 늘었는데, 이는 작년 미국산 원유 수입량의 5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미국 석유업계는 가슴을 졸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아직 미국산 원유는 중국에서 관세 폭탄을 맞은 545개 수출품목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할 경우, 중국 정부의 추가 관세 폭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의 수레시 시바난담 아시아 원유 부문 책임자는 "미국의 관점에서 중국은 중요한 시장이지만 미국이 중국보다 더 많이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원유 출하량은 중국의 수입량의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 노다지나 다름없는 셰일유는 미국에 세계 2위 석유소비국인 중국 시장을 뚫는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의 대 중국 수출은 미국이 2015년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한 후 급격히 증가, 올 상반기에도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유사들은 대부분 러시아와 중동에서 생산되는 중질유를 정제한다. 그러나 아시아 제유사들은 미국산 셰일유까지 정제할 수 있도록 체질을 바꾸고 있다.
그동안 중국이 미국산 석유를 수입한 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 미국 정유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1년 넘게 할인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중국의 경기 침체와 신재생 에너지 수용 정책은 수요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지만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과 항공 여행이 인기를 끌면서 석유 수요는 여전히 강세다. 중국의 원유 수입량은 최근 수년 간 계속 늘어, 올 1월에는 2억9800만 배럴에 이르렀다. 이는 작년초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던 미국을 능가하는 규모다.
중동 국가들은 현재 수요의 7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까지 그 비율이 80%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다.
WSJ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늘리기로 한 가운데, 미중 간 무역전쟁이 깊어지면 중국이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 쪽에서의 원유 수입을 늘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렇게 되면 미국 정유사들은 그건 공들여온 중국 거래처들을 잃게 돼 새로운 바이어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CME그룹의 에릭 놀랜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장벽을 쌓기 시작하면 비효율성이 발생하게 된다”며 “그것은 미국이 중국 시장에서 쌓은 강한 점유율을 빼앗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