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아이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공급망에 변화가 일 조짐이다. 중국 정부를 등에 업은 BOE테크놀로지가 삼성전자가 독점하고 있는 애플 OLED 패널 납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현재 애플은 작년에 출시한 신제품 ‘아이폰X’에 삼성의 OLED 패널을 주로 쓰고 있다. 하지만 BOE는 차기 신제품에는 자사의 OLED가 쓰이도록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BOE는 중국 국영업체로, 이미 애플에 아이패드와 맥북 컴퓨터용 패널을 납품하고 있지만 그것도 모자라 애플의 핵심 부문인 아이폰용 패널에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WSJ는 BOE가 애플에 아이폰용 OLED 패널 납품을 성공할 경우 중국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 해당 패널 분야에서 선두인 한국과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플은 업계에서도 최고의 품질을 요구하는데다 부품에 대해서도 요구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분석 업체인 IHS 마르키트의 데이비드 사이 디스플레이 부문 수석 연구원은 “몇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중국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BOE는 이를 뒤집은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BOE는 미국에서는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IHS 마르키트에 따르면 BOE는 작년에 대형 LCD 패널 공급 업체 중 1위를 차지했다. 2014년에는 5위였다.
애플 입장에서는 기술력과 생산력만 입증된다면 BOE 제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동안 애플은 자사의 경쟁업체인 삼성의 OLED 패널 의존도가 높다 보니 패널 수급을 원활히 하고 경쟁을 유발해 가격 협상력을 높일 목적으로 공급망의 다변화를 꾀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BOE가 유리한 건 중국 국영회사라는 것이다. BOE는 정부가 최대 주주로, 애플이 BOE를 납품 업체로 선정하면 중국 사업에서 특혜를 받을 수도 있다. 중국 리서치업체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의 댄 왕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중국 공급업체의 기술에 대해 품질을 보증하면 중국 정부가 애플에 호의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애플에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미·중 무역 긴장과 관련해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에 불공정한 혜택을 주고 있다”는 점을 일례로 들고 있는데, 애플이 BOE 제품을 띄워주기라도 했다간 미국 정부에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어서다.
WSJ는 실제로 BOE가 급격히 성장한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해당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있다고 지적했다. BOE가 중국에 건설 중인 첨단 디스플레이 공장 5개 중 4개는 지자체가 초기 투자의 대부분을 지원했다.
그러나 BOE는 유능한 인재 영입에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WSJ는 BOE가 국내외에서 유능한 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하다보니 오히려 선발인 한국 대만 일본에서는 유능한 인재를 찾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압력을 넣는다고 해서 애플이 당장 BOE의 OLED 패널을 쓰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BOE는 2011년경 애플의 문을 처음 노크했지만 애플은 4년 후인 2015년에야 BOE의 제품을 받아들였고, 올해 처음 공개한 200개 주요 공급업체 목록에 BOE를 올려줬다. 그만큼 애플로부터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따라서 업계 관계자들은 애플이 작년에 출시한 아이폰X부터 OLED 패널을 채용했지만, BOE는 일러도 2020년께부터나 OLED 패널을 납품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올해 공개 예정인 아이폰 신제품에는 이미 삼성 제품이 주로 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BOE가 선발주자들을 따라잡을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BOE는 몇달간의 시험 끝에 이미 쓰촨성 청두 공장에서 OLED 패널을 생산하고 있으며, 생산량은 약 70%로 안정적인 대량 생산이 가능한 단계에 들어섰다. BOE는 이미 중국 화웨이테크놀로지에 OLED 패널을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