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산업발전 대토론회’에서 ‘중국의 추격, 우리 반도체 산업 현황’을 주제로 발표한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반도체 R&D 지원은 대기업에 돌아간다는 인식 아래 정부의 반도체 분야 R&D 사업 지원 예산이 삭감됐다”며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산업부 소관 반도체 분야 R&D 사업 지원 예산은 2009년 1003억 원에서 2017년 314억 원으로 감소했다. 8년 새 70%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신규과제 예산은 2009년 355억 원에서 2017년 185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깎였다. 심지어 2016년에는 신규과제 지원 예산이 ‘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박 학회장은 국가 R&D 예산 감소로 반도체 전공 인력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대는 2006년 97명의 반도체 석·박사 인력을 배출했지만 2016년은 23명에 불과했다. 연구개발비가 부족해지면서 교수들의 연구 활동도 줄어든 탓이다. R&D 예산 감소와 반도체 인력 감소 추세는 일치한다.
박 학회장은 중국의 무서운 추격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그는 “중국은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70조 원)을 투자해 현재 15%에 머물러 있는 반도체 장비·소재·부품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라며 “우리나라가 중국에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중 하나는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올 정도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대대적인 정부의 지원 아래 첨단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이끌었던 LCD 산업은 지난해 중국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2016년 LCD 점유율은 우리나라(34.9%), 중국(28.9%) 순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중국(34.1%)이 우리나라(30%)를 추월했다. 반도체 업계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LCD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박 학회장은 “글로벌 반도체 장비·소재·부품 육성을 위한 국가 R&D 사업 조기 실행이 절실하다”며 “국가 R&D 예비타당성 조사 조기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도체 소자업체(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공정 기술을 투입해 글로벌 수준의 반도체 장비·소재·부품의 기술 및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R&D와 연계한 고급 R&D 인력 양성 및 기업체 특화된 엔지니어 양성 이원화 프로그램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도 국내 반도체 산업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중국은 범국가적으로 반도체 굴기로 200조 원 이상 투자하는데, 우리 정부가 소홀한 면이 없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1등을 넘어 초격차를 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민관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화답했다.
또 백 장관은 “차세대 반도체 설계 및 제조 기술 확보와 우수 인력양성을 위한 대형 국책사업을 범정부 차원에서 기획 중이며 올해 하반기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