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이른바 ‘팀 코리아’의 맹위가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져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했던 일본 기업들은 되레 이런 상황을 부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얼마 전 발표한 ‘71개 주요 상품·서비스 점유율 조사’에서 더 나아가 ‘급성장 분야’, 특히 반도체 분야에 대해 더 면밀히 분석한 결과를 11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유난히 급성장한 분야였다. 반도체 분야별 성장률을 보면 DRAM이 76.7%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NAND형 플래시 메모리(46.6%)였다. PC 스마트폰 뿐 아니라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급성장한 영향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급성장 반도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일본 기업 중에서는 캐논이 두각을 나타내긴 했지만 전반적인 존재감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다.
데이터 임시 저장에 사용되는 DRAM은 데이터센터 서버용 수요가 시장 확대의 원동력이었다. 저장 용량의 증가로 이어지는 회로의 미세화가 지연되면서 저장 용량 기준으로 본 생산량 증가는 전년 대비 20% 증가에 그쳤지만 대표 제품의 거래 가격이 1.5배로 뛴 것이 시장 확대에 주효했다. DRAM 분야에서 상위 1, 2위는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했다. 한때 이 분야는 10여개 기업이 난립해 출혈 경쟁을 벌였지만 현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3사가 경쟁 구도를 형성, 가격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상위 5위에 일본 기업은 전무했다.
데이터 저장에 사용하는 NAND형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압도적이었다. 이 분야는 기억용량 기준으로 생산량이 약 40% 늘었다. 데이터센터 수요 확대에 힘입어 가격도 꽤 높은 수준에 형성돼 있다. 신문은 일본 도시바의 NAND 세계 점유율이 16.5%로 2위를 유지하긴 했지만, 1위 삼성전자(38.7%)와의 점유율 격차는 더 벌어져 전년보다 5.5%포인트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도시바메모리가 한미일 연합에 인수돼 그 산하에서 어느 정도 규모를 키우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시장 성장률이 다섯 번째로 높았던 중소형 OLED 패널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은 두드러졌다. 미국 애플에 아이폰X용 OLED 패널을 독점 공급하는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90.1%로, 이 분야는 삼성전자의 독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위 역시 한국 기업인 LG디스플레이가 차지했다. 일본 소니의 점유율은 0.5%로 거의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시장에 대해 기존의 ‘실리콘 사이클’을 넘어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대외적인 변수가 커지면서 이같이 단언하기엔 시기상조라는 평가도 있다. 반도체 및 제조장비를 둘러싸고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이 과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을 압도하고 있지만 미중 무역 마찰과 관련, 중국 당국이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한미 반도체 시장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 시장에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