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감소에 영향…매년 정책 결정 전 면밀한 관찰 필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기형적인 재벌 지배구조에 직격탄을 날렸다.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개별 기업들이 각 기업의 주주가 아닌 그룹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OECD는 20일 발간한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재벌이 한국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돼오고 여전히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긍정적인 역할에도 우려가 있다. 기업가정신 퇴색, 불공정 거래 관행, 자본에 대한 잘못된 분배 등 부정적인 영향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랜달 존스(Randall S. Jones) OECD 한국경제담당관은 한국의 창업주 일가들이 어떻게 수십 개 계열사에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재벌 일가의 직접소유 지분율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그룹 계열사들이 재벌 일가가 지분을 가진 계열사에 수익을 몰아주면서 그룹 내 자본이 특정 계열사로 쏠리고 있다. 존스 담당관은 이를 ‘터널링(tunneling)’으로 표현했다.
그는 “계열사를 통해 구매를 많이 하는 회사는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그 계열사를 통해 매출을 많이 일으키는 기업은 수익률이 낮다”며 “또 재벌 일가가 지분을 50% 이상 소유한 계열사는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지만, 계열사가 지분을 많이 소유한 회사들은 수익률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룹에 속한 각 회사는 별도 법인으로, 자신의 주주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며 “그런데 주주를 위해 일하는 대신 그룹 전체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OECD는 이 같은 지배구조로 인해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되고, 한국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대안으로 존스 담당관은 “경쟁을 통해 기업들이 생존에 집중하게 되면 반생산적이고 비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할 여력이 없어질 것”이라며 “또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사외이사의 역할과 효율성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들이 손실을 보상받기 위해 집단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역할도 필요하다. 경영권 시장 활성화로 기업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되는 걸 도와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OECD는 국내 경제의 최대 화두 중 하나인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도 조언을 남겼다. OECD는 보고서에서 소득주도 성장의 일환인 공공부문 채용 확대, 사회복지지출 증가, 최저임금 인상이 가계소득 및 민간소비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보면서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존스 담당관은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숙박·음식업과 도·소매업 등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봤다. 그는 2020년 1만 원 인상을 목표로 한 한국의 최저임금 정책 방향에 대해 “2019년과 2020년, 2021년에 최저임금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현재 상황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OECD는 한국의 거시경제 동향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먼저 최근 저성장을 이어갔던 한국 경제가 세계 교역량 확대와 반도체 수요 증가, 추가경정예산 등에 힘입어 2017년 3.1% 성장하며 반등했다고 평가했다. 또 건설투자 둔화에도 세계교역 성장세에 따른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올해 3.0%, 내년 3.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거시적 관점에서는 한국이 고령화 등 미래 도전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더 넓은 영역에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고 지출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런 점에서 사회복지 부문으로 지출 규모 재분배는 적절한 조치이지만,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적 관점의 재정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지출 규모도 관리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그 방안으로는 상대적으로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부가가치세 인상 등을 제시했다.
통화 정책에 대해서는 정책금리 인상을 통해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가계부채, 자본 유출 등 금융안정 리스크와 물가 상승 압력 등을 고려해 결정하고, 미국과 금리 격차가 커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봐서는 금리를 당장 인상해야 할 적절한 명분이나 설득력은 없다”라고 봤다.
이 밖에 OECD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장기 해결 과제로 보육교사 자격 기준 강화와 사립 보육시설에 대한 진입장벽 완화, 성별 임금격차 해소와 근로시간 단축, 출산휴직 보장 등을 통한 여성고용 확대를 제시했다. 또 정규직 근로자 고용 보호 완화와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 적용 및 직업훈련 확대를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