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안중근 먹글씨 1억6000만 원에 낙찰”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사형 집행일을 며칠 앞두고 안중근 의사가 여순(旅順) 감옥에서 쓴 작품이다. “貧與賤人之所惡者也(빈여천인지소오자야)”, “가난하고 천한 것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왼편 하단에 ‘관동도독부감옥서(關東都督府監獄署)’라는 인쇄 글자가 있는 편지지 양식의 종이에 쓴 글씨인데,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 원래 서예 작품으로 쓴 게 아니라 어떤 문장을 쓴 몇 장 분량의 원고로 보인다. 누구에게 써준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지만, 작품이라기엔 글자가 좀 작고 원고치고는 글자가 좀 크다. 작품에는 안 의사의 엄지손가락 지문이 찍혀 있어 더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이 이 글씨를 ‘먹글씨’라고 칭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붓글씨라는 용어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먹글씨’라고 하니 적잖이 생소하다. 먹글씨는 사용한 재료인 먹에 초점을 둔 용어로, 붓으로 쓰든 펜으로 쓰든 막대기로 쓰든 도구에 먹을 묻혀서 쓴 글씨를 말한다. 그러므로 먹글씨라고 해서 다 모필(毛筆, 붓)로 쓴 붓글씨는 아니다. 먹글씨는 경필(硬筆:딱딱한 필기도구. 硬:굳을 경, 筆:붓 필)로 쓴 글씨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붓글씨는 먹을 사용하든 물감을 사용하든 펜이나 사인펜 등과 같은 경필로 쓰지 않고 동물의 털로 만든 부드러운 필기도구(軟筆 軟:부드러운 연)인 붓을 사용하여 쓴 글씨를 말한다. 붓이나 펜에 먹물을 묻혀 쓴 글씨는 먹글씨이고 먹물을 주로 사용하지만 먹물이 아닌 다른 물감을 사용했더라도 붓으로 쓴 글씨라면 다 붓글씨인 것이다.
그러므로 붓에 먹을 묻혀 쓴 안중근 의사의 이 글씨는 당연히 붓글씨라고 해야 맞다. 붓글씨, 즉 서예는 먹이라는 재료도 중요하지만 붓의 운용으로 인해 그 특징이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 글씨이기 때문이다. 새삼 먹글씨라는 말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