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27년 전 합의한 ‘남북 저작권 실무회의’

입력 2018-05-11 13:14 수정 2018-07-0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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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북미정상회담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판문점 선언’ 이후 모처럼 찾아온 평화에 대한 기대는 어느 시인의 시처럼 부산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달라고 하는 것을 잠꼬대 아닌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평창 동계올림픽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조바심을 냈던 터라 그 짧은 세월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고 서로에 대한 시선을 모으게 한 것은 단연 노래였다. 동계올림픽 전후로 서울과 평양에서 이루어진 문화예술 공연과 판문점 회담 직후 남북 정상이 함께 관람한 작은 공연에 이르기까지 노래는 늘 중심에 있었다.

노래와 책, 영화가 오가면 자연스럽게 저작권 문제가 발생한다. 1980년대 말 정부의 공식 해금 조치로 월북작가들의 작품이 남한에서 출판되기 시작했다. 북한측의 허락 없이 남한에서 무분별하게 출판되자, 북한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통해 월북작가들의 소설 등 작품을 저작권으로 보호해 달라는 여러 건의 소송을 남한 법정에 제기했다. 법원은 일관되게 북한에도 우리 법이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북한 저작물을 보호해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헌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고 한 것에 근거한다. 북한을 여전히 미수복지역으로 보는 한에서는 북한 주민의 저작물을 남한 저작권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한편 통일을 지향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4조는 남북 간 교류협력법의 근거 조항이 되기도 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북한 주민에 대해 남한 법을 적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북한이 갖는 이중적 지위에서 비롯된, 이와 같은 모순 현상은 비단 저작권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으로 각종 토지소유권, 상속 등 민사문제, 투자문제, 노동법, 세법 등 거의 모든 법의 영역에서 북한 주민이 남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의 사법질서를 대비하기 위해 최근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이 북한 주민과 관련해 발생한 그간의 판결을 모아 방대한 자료집을 펴낸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과 북은 분단 후 70여 년 동안 근대와 현대를 압축적으로 경험했기에 각기 서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의 전통에 터 잡은 법과 제도의 골이 예상보다 훨씬 크고 깊다. 통일의 시기에 관해서는 견해차가 있을 수 있지만, 법제도에 대한 상호 연구와 학술 교류는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평양 공연 후, 남한 저작물이 북한에서도 보호될 수 있는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북한 저작권법 연구 - 조용필의 평양 공연은 북한에서도 저작권법상 보호받을 수 있는가?”, 법조 제607호, 2007.4). 연구를 위해서는 북한 저작권법을 살펴봐야 했는데, 당시 북한법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정부가 운영하는 통일법제 데이터베이스에서 제한 없이 찾아볼 수 있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전 세계에서 구할 수 없는 법은 오로지 북한법밖에 없을 정도였다. 꽤 오랫동안 비밀취급 인가를 받은 사람만이 북한법에 접근할 수 있었기에 현재 북한법 연구자는 소수에 그치고 있다. 그간 개별 법 전공을 불문하고 북한법 또는 통일법이라는 범주로 묶어 취급하기도 했지만, 북한에도 우리와 같이 여러 법이 있다는 점에서 이런 접근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남북 간 교류가 봇물 터지듯 하여 정부 입장에서는 적절한 속도 조절이 필요할 수도 있고 남북 간의 새로운 합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문화를 다루는 저작권 분야에서는 협상을 위한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지 않다. 차제에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 의거한 부속합의서 제14조로 마련했으나 27년간 한 번도 회의를 열지 못했던, ‘남북 간 저작권 보호에 관한 세부사항 협의 실천을 위한 실무회의’를 하루빨리 개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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