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완화는 재벌위한 금융정책이다"<시민단체>

입력 2008-04-01 10:18 수정 2008-04-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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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규율과 감독 본연 업무 실종"

시민단체들이 31일 금융위원회(금융위)의 대통령 업무보고와 관련 재벌만을 위한 금융 정책을 천명하고 있다며 일제히 비판에 나서고 있다.

금융위는 이날 국제기업(글로벌 플레이어) 출현기반 마련을 위해 ▲금산분리 3단계 완화 ▲비은행지주회사의 제조업체 보유 허용 ▲산업은행 민영화 및 금융사 해외진출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보고에 따르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원칙'의 폐기는 3단계로 이루어진다. 제1단계는 연기금 및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에 의해서 제2단계는 산업자본이 직접 은행 지분을 상당한 정도로 소유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제3단계는 모든 사전적 소유규제를 완전히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해 하반기부터 PEF가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중장기적으로는 금산 분리 원칙이 허물어지면서 여론에 따라서는 재벌의 실질적 은행지배가 1~2년 안에 급속히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또 증권·보험사 등 비은행권 금융지주회사는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을 하는 자회사를 둘 수 있게 돼 재벌그룹들이 금융자회사의 고객돈을 이용 경영권 강화에 전용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는 공시 강화 등 사후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대해 시민단체들은 "금융위가 본연의 업무인 규율과 감독은 망각한 채 재벌에게 빗장여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정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시장 경쟁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 추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감시활동 강화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고 뜻을 모으고 있다.

◆ 현재벌제체 그대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

경제개혁연대는 금융위의 비은행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 규제 대폭 완화 방안은 금융자회사와 비금융자회사를 모두 지배하는 현 재벌체제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실례로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하에서는 삼성에버랜드(금융지주회사)→삼성생명(금융자회사)→삼성전자(비금융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실례로 들었다. 하지만 금융위 방안대로 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삼성그룹은 현재의 출자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해 승계구도를 완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금융자회사(대한생명)와 비금융자회사(한화건설)를 사실상 동시에 지배하고 있는 한화그룹도 현 지배체제를 유지한 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게 경제개혁연대 주장이다.

지주회사체제가 현 재벌체제에 비해 출자구도가 단순하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는 자회사(손자회사)에 대한 출자한도가 낮은(상장: 20%, 비상장: 40%) 현 제도에서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이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은행지주회사에 대한 규제완화는 결국 금융계열사를 이용해 비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현 재벌체제를 합법화해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금융위 업무보고 내용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완전히 붕괴돼 있다. 금융위가 본연의 임무에 보다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 길 터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금융위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이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증폭시키고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 될 수 있는 길을 터주게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은행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을 보유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소수 재벌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금융위의 정책은 결국 소수 재벌의 이익을 위한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금융자본으로 인정해 은행을 소유하도록 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국책은행을 만드는 것이며 민영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특히 연기금의 경우는 의결권만 포기하면 지금도 은행지분을 10%까지는 보유할 수 있는데 4% 제한이라는 일반규정을 손댈 필요가 없다고 꼬집었다.

경실련 관계자는 "재벌의 은행소유 허용은 사회 전 부분에 영향력을 증폭시켜 우리사회를 재벌공화국으로 더욱 치닫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 금산분리 완화 단계별 문제점

참여연대는 금융위의 금산분리 중장기적 3 단계별 완화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은행을 연기금이나 사모펀드(PEF)에 넘기겠다는 제1단계 방안에 대해선 연기금이 지배구조나 의사결정 과정이 은행을 경영할 만큼 투명하거나 안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론스타의 사례에서 보듯 PEF는 장기적 시각에서 은행을 책임있게 경영하기 보다는 단기적 투자수익 극대화에 주력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2단계인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소유상한 확대도 삼성 비자금 특검에서 드러났듯 재벌에게 완전히 종속돼 있는 금융기관의 현실을 금융위가 간과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산업자본이 유한책임사원(LP)으로 참여할 경우 산업자본의 투자비중이 현행 10% 한도를 초과하더라도 금융자본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금융위 발상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산업자본의 투자비중이 4%만 초과해도 그 펀드를 산업자본으로 간주하는 증권투자회사(뮤추얼펀드)에 대한 규제와 비교해도 형평이 맞지 않는 특혜일 뿐이라는 것.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규제완화 부분인 제3단계에선 금융자회사와 산업자회사를 동시에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복합 지주회사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주장이다. 참여연대는 꼬집어 이러한 규제완화들이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를 풀어주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금융위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본연의 업무라고 본다. 금융위가 하루빨리 금융감독의 정도를 걸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금융기관을 산업자본에 내주는 나라 없다>

금산분리 완화가 글로벌 기준이라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금융기관을 산업자본에 내어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06년 7월말 기준 세계 100대 은행의 주요주주인 292개 산업자본 가운데 89%는 4% 미만의 지분밖에 갖고 있지 않다.

시민단체는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로 4%로 제한하는 현행 규제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완화해 10%로 상향하려는 것이 이번 금융위의 보고 내용이다.

금산분리 원칙이 확립돼 있는 미국에서도 비은행지주회사에 대해서는 명시적 금지 방식의 소유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 보험법에 따르면 광범위한 공시규제와 특수관계인간 거래에 대한 엄격한 사전승인 보고 규제를 통해 비은행부문에서도 사실상 금산분리를 관철시키고 있다.

실례로 올해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된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나 GE그룹 등은 비은행지주회사 산하에 금융자회사와 비금융자회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자회사간에 출자관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완전히 분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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